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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정정용호가 한국사회에 준 충격

 

20살 이하 축구대표팀의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준우승 신화가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메가스포츠인 남자축구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성적이다. 특히 18살의 나이로는 역대 네 번째, 메시가 18살에 받은 후 14년 만에 18살 골든볼의 주인공이 된 이강인 선수에게 축구팬들이 열광한다.

이런 대형 축구 이벤트가 터지면 국가적으로도 큰 사건이 되고, 동시에 우리 사회 시스템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돼왔다. 과거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 신화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이 만끽한 사건이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때는 히딩크 리더십이 크게 화제가 됐다.

히딩크 리더십은 한 마디로 수평적 리더십이었다. 그는 선수들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하면서 존댓말을 금지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지시하고, 후배는 선배 눈치를 보는 바람에 경직된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 특유의 수직적 서열문화를 파괴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낳았다. 상명하복의 수직성, 개인의 자율성을 용납하지 않는 집단성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었는데 이방인 축구감독이 그것을 깬 것이다. 엄청난 성과가 나타났고 각 분야에 히딩크 리더십 열풍이 불었다.

 

1983년 청소년대회 4강 신화는 수직성과 집단성을 극대화해 이룩한 것이었다. 지도자의 구타와 폭언이 일상적인 분위기에서 팀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투혼 축구로 신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청소년대회 4강이 한계였다. 더 높은 연령대로 올라가면 국제경쟁력이 오히려 퇴보했다. 그랬다가 2002년에 수평적 리더십으로 월드컵 4강에 오르면서 한국이 한 차원 더 성장했다.

히딩크 리더십은 실력주의, 합리주의 리더십이기도 했다. 한국은 명성, 배경, 연고가 매우 중요한 사회다. 개인이 현재 어떤 사람인지보다, 1류 코스를 밟은 사람인지, 1류 집단에 속한 사람인지, 기존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더 따진다. 그래서 10대 후반의 성적으로 결정된 학벌이 그의 평생을 좌우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축구계에서도 학벌이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히딩크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실력만으로 국가대표를 뽑았다고 알려졌다. 이것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번 20세 이하 대표팀도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정정용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기존 명성과 배경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축구 지도자도 좋은 대학을 나온 스타 선수 출신이어야 성공할 수 있었다. 서양에선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던 히딩크도 스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지만 한국은 달랐던 것이다. 정 감독은 명문대 출신도,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닌 그야말로 흙수저지도자다. 그런 정 감독이 이번에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과거 스펙으로 현재를 평가하는 전근대적인 우리 사회 시스템에 반성이 나타난다. 서구식으로 지금 현재 그 사람의 능력만 보는 실력주의의 싹이 움트는 것이다.

 

정정용 감독은 투혼과 이별하자면서 보다 자율적이고 즐기는 축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대회 때의 조직문화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이다. 감독에게 구타당하며 주눅 들었던 83년 대표선수들과 달리 이번 20세 이하 대표 선수들은 흥겨운 음악을 들으며 감독과 스스럼없이 장난 칠 정도로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히딩크 리더십에 이어 한국사회에 2차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 DNA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강인 선수의 엄청난 기량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른 손흥민, 이강인 선수 모두 한국 시스템에서 벗어나 성장했다. 손흥민 선수는 아버지의 지도를 받다 독일로 갔고, 이강인 선수는 스페인에서 지도 받았다. 한국 시스템에서 지도 받았다면 이들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무리 히딩크 리더십이 충격을 주고 정정용 감독이 그것을 더 발전시켰어도 우리 교육현장에선 여전히 수직적 문화가 대세다. 그런 환경에서 톡톡 튀는 어린 선수가 자신의 개성을 자신감 있게 발전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린 선수는 지도자 눈치 보며, 선배 눈치 보며, 지시만 따르는 로봇처럼 크기 일쑤다. 이강인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가 나오기 힘들다. 히딩크에서 정정용으로 이어지는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이 우리 사회 보편적인 조직문화로 자리 잡아야 더 많은 이강인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