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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기안84, 풍자라면 더 문제다

 

기안84가 최근의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사과했는데, 그 사과가 기안84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기안84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풍자라는 표현이 문제다. 만약 100% 상상이고, 웃자고 한 개그일 뿐이라고 했다면 그나마 약간의 변명이 되었을 것이다. 풍자는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를 야유하듯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논란이 된 내용에 대해 풍자라고 해명했다는 건 기안84가 그 내용을 현실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즉 기안84의 세계관 또는 여성관인 것이다. 이러면 문제가 더 커진다. 

문제의 웹툰 복학왕 - 광어인간에서 여주인공 20대 봉지은은 비정규직으로 취업은 했으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능하다. 타자를 못 칠 정도다. 오피스 프로그램 사용법도 모른다. 남성 선배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은 오락을 할 정도로 불성실하고 의존적이다. 그녀의 생존전략은 다름 아닌 애교.

 

극단적으로 과장된 설정이다. 여성이 무능하고 불성실하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과장해서 그렸다.

그런 봉지은은 회식 자리에서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학력이나 스펙, 노력...레벨의 것이 아닌’, 이런 지문과 함께 갑자기 조개를 깼다. 그게 40대 팀장의 눈에 들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두 사람은 사귀는 사이가 된다. 다른 남직원이 팀장에게 둘이 잤냐?’고 묻자 팀장은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인다.

 

여기서 조개를 깨는 장면이 40대 팀장과의 성관계를 암시한다고 누리꾼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작가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고, 봉지은이 조개를 깰 때 수달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에 기안84의 해명대로 정말 수달을 흉내 내는 단순 개그 코드로 그렸을 수도 있다. 

수달처럼 표현했다는 기안84의 해명을 인정하더라도 어쨌든 문제는 봉지은이 업무 외적인 행위로 40대 팀장의 마음에 들어 정규직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은 사귀게 된다. 이것은 여성이 무능력하면서도 여성성을 내세워 능력자에게 기대 손쉽게 이득을 누리고, 남성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불이익을 당한다는 인터넷상의 여성혐오 코드를 그대로 재현한 내용이다. 마지막에 손가락 세 개를 들어올리며 팀장과의 성관계까지 암시한 것은 그런 여성혐오 코드의 결정타다.

 

이게 단순한 상상이 아닌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한 내용이라고 기안84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어느 취업지망생이 오피스 프로그램도 못 쓰면서 팀장에게 귀여움과 여성성을 어필해 정규직 취업을 한단 말인가? 세상에 없는 현실을 기안84는 사실이라고 믿으며 자신만의 풍자를 하고 있다. 이러니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번 만화내용과 해명을 보면 기안84에게 사회적 성찰이나 학습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안84는 이제 유명 방송인이자 유명 작가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보다 주의 깊게 창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나도는 정서를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는 느낌이다. 이러면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기안84 연재를 중단시키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만화를 도덕률로 재단해 존폐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과하다. 원래 만화 속엔 부적절한 상상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 걸 일일이 금지할 순 없다. 정말 노골적으로 심각한 표현이 아닌 한 작가의 자유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금지까지 가는 것은 과도하고, 이런 문제는 공론장에서 정확하게 비판해서 작가의 사회적 성찰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