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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대중이 오디션에 바라는 것

 

최근 MBN '보이스트롯이 공분에 휩싸인 적이 있다. 준결승 결과 때문이다. 당시 1위 홍경민, 2위 슬리피라는 결과가 나왔고 추대엽과 박세욱이 공동 6위에 올랐다. 9위는 박광현, 10는 문희경이었다. 

여기서 박세욱을 제외한 모든 출연자가 유명인이다. 특히 홍경민은 이미 불후의 명곡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중견 가수로, 도전자가 아닌 심시위원을 맡아도 어색하지 않을 위치에 있다. 다른 사람들도 예능이나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진 기성 연예인들이다 

여기에 대중이 공분한 것은 무명 신인들이 푸대접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데뷔했어도 오랫동안 무명의 설움을 겪었거나, 기회를 간절히 바라는 신인 또는 지망생들이 기성 연예인들에게 밀려난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것은 무명 신인의 인생역전을 응원하는 대중의 기대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무명 가수, 신인들은 간절하고 절박하다. 어떻게든 이름과 얼굴을 알리려 사력을 다 한다. 그 절박함 때문에 희로애락의 스토리가 발생한다. 그에 따라 그들을 밀어주려는 팬덤이 생겨난다. 그 팬덤의 열정적인 활동이 신드롬을 만들어낸다. 

특히 실력이 뛰어난 무명 가수가 나타났을 때 대중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기존 가수 못지않은 실력자가 그동안 외면당한 건 불공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은 실력이 출중한 그 도전자를 스타로 만들어 실력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 만든다. 그런 인생역전을 보며 대중은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렇게 탄생한 스타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감정이입한다. 

하지만 이름이 이미 알려진 유명인에게선 이런 스토리가 생겨나기 어렵다. 무명 신인은 오디션에서 이름을 알리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지만, 기존 유명인은 이름 알렸다고 새삼 감격할 이유가 없다. 무명 신인은 오디션 진행에 따라 인생행로에 천양지차가 날 수 있지만 기존 유명인은 오디션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간절함이 덜 느껴지고 몰입도가 약해진다.

 

이런데도 보이스 트롯준결승에서 무명 신인들이 탈락하면서 기존 유명인들이 상위를 차지하자 공분이 타져 나온 것이다. 초반에 과도하게 많은 기성 연예인들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떨어졌던 쇼를 살린 것이 실력파 무명들의 등장이었다. 박세욱, 조문근, 김현민, 선우, 아이돌 출신 도전자들, 박상우, 문용현, 김다현 등인데 여기서 일부가 탈락했기 때문에 마치 기존 유명인들이 신인의 오디션 자리까지 차지한 모양새가 돼서 분노가 더 커졌다. 

보이스트롯결승에선 1위 박세욱, 2위 김다현, 3위 조문근이라는 상식적인 결과가 나왔다. 준결승에서도 이렇게 신인들이 약진했으면 공분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우승자인 박세욱이 준결승에서 공동 6위에 불과했던 것도 당시 발표된 순위를 납득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박세욱이 슬리피보다 아래고, 추대엽과 동률이란 것은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에 마치 무명이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유명인이 우대받는 듯한 구도가 만들어졌다. 대중이 원하는 공정의 가치에 정면으로 역행한 것이다. 

결승전에선 상황이 바로잡혔기 때문에 공분은 잦아들겠지만, 준결승에서 유명인에게 밀려 탈락한 무명 신인들에 대한 아쉬움은 이어질 전망이다. 대중이 오디션에서 원하는 것을 잘못 읽었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다. 프로그램 측은 기존 유명인을 내세우면 대중이 흥미를 느낄 거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대중이 오디션에 원하는 건 무명 신인이 놀라운 실력을 선보여 인생역전하는 성공 스토리였다. 이 부분을 놓치고 유명 연예인의 화제성에 기대려는 전략이 반복된다면 공분 사태도 재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