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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서태지 이제 살아있는 역사 따위는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서태지 컴백에 바라는 것

- 이제 살아있는 역사 따위는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대중가요판에 등장하는 각종 신곡들에서 호기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서태지 컴백이 오랜만에 대중가요 신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요즘 가요프로그램에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신곡의 주인공들이 누가 있을까? 신해철, 클래지콰이, 자우림(김윤아), 에픽하이...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 노브레인 같은 팀은 인디 계열이니 주류 대중음악쪽과는 세계가 다르고.


몇 달 전에 이윤정이 보컬을 맡아 부르는 노래를 가요프로그램에서 들었다. 괜찮은 노래가 나왔다 싶었는데 그 후로 소식이 없다. 뭐 좀 제대로 된 노래가 나왔다 싶으면 바로 사장되는 환경이다. 클래지콰이나 자우림은 제대로 된 노래로 살아남을 줄 아는 능력까지 지녔다. 서태지는? 이 분야에 관한 한 대왕님이다. 캡틴 오 마이 캡틴!


음악성과 폭발적인 대중성을 함께 가진 주류 대중음악인으로 서태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실로 한국 대중음악사는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음악으로 봐도 그렇고, 마케팅 기획으로 봐도 그렇고, 방송사와의 권력관계로 봐도 그렇고, 음반판매량으로 봐도 그렇다. 가히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당연히 서태지의 신보가 발표될 때는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된다.


서태지는 신보를 발표할 때마다 매우 고심하는 것 같았다. 보는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냥 본인이 즐거운 작업을 하면 될 텐데 뭘 그리 매번 남들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 고심할까? 남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는 것은 서태지가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스스로 걸머진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난 알아요'는 가요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었다. 이 노래를 어느 한 장르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던 거다. 헤비메탈 리프가 깔리면서 랩댄스가 나오는가 하면 중간엔 트로트 비슷한 분위기도 풍긴다. 도대체 이런 노래가 한국 역사상 있었던가!


서태지 이후 락 기타가 댄스음악들에 기본처럼 깔리는 웃지 못할 시절도 있었다. 거기에 힘을 보탠 것은 신해철의 넥스트였다. 교주 신해철이 서태지의 뒷북을 쳤던 것이다. '하늘이 나를 내고 왜 또 저 이를 냈단 말인가!' 이렇게 한탄했던 것이 오나라의 주유였던가? 가히 신해철이 주유라면 서태지는 제갈공명이라 할 만했다. 그럼 사마중달은? 글쎄, 한때는 공일오비가 그런 것 같기도 했었는데 '같기도'로 끝나버렸다. 이제는 다 추억이 된 얘기들이다.


서태지의 놀라운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음악, 또 하나는 랩. 한국 대중음악 사운드의 질을 한 순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버렸다. 나이트클럽에서 전주만 듣고도 구분이 됐던 가요와 팝송이 서태지 이후부터는 그렇지 않게 됐다. 역사를 그 이전와 그 이후로 이렇게 선명히 갈라버린 인물이 얼마나 있을까? 서태지는 기적이었다.


또 서태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어로는 랩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됐었다. 아마 서태지 전에 랩을 시도했던 사람이 내 기억으론 김수철이나 홍서범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아류에 불과했다. 서태지가 자신의 랩을 들고 나타났을 때 오, 그건 정말 충격이었다. 서태지가 세상을 새로 열었다. 한국어로도 랩이 가능했던 것이다.


'난 알아요 이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 정말 떠나는가!'


이다음 이어지는 양현석의 파워댄스. 그리고 그 배경음악이 댄스음악이 아닌 헤비메탈이었다는 것. 이건 서태지 이전 한국 대중음악의 상식으론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 천재가 나타나 기존의 체계를 부셔버렸다. 요즘 말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이다. 기존 장르 안에서 인기 따먹기를 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시장을 열었다.


서태지가 열어젖힌 세계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빛과 그림자를 던졌다. 빛은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올려버렸다는 것. 그림자는 소방차와는 다른 현대적인 댄스그룹으로 10대들의 이목을 한 방에 장악해 가요판 헤게모니를 접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을 구체화시킨 것은 SM엔터테인먼트였다. 서태지와아이들 짝퉁인 HOT로 ‘역사는 두 번 반복되는데 두 번째는 희극’이라는 경구가 현실이 됐다. 그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고사해가고 있다.


4,000억 원대까지 갔던 음반시장은 이제 수백 억 수준으로 몰락했다. 깔끔하게 망해버린 것이다. 가수들은 버라이어티로 콘서트 시장으로 연일 탈출하고 있다. 보트피플 처지가 됐다. 서태지는 한국대중음악 산업의 정점이었으며 몰락의 기점이기도 했다. 물론 서태지 탓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2집도 충격이었다. '너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마 음 이~' 하여가의 이 랩은 '난 알아요'의 랩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서태지는 이 노래에서도 예의 그 트롯트 전법을 이어나갔다. 여기까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서태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었다.


대중예술인에게 상업적 매니지먼트는 양날의 칼이다. 그건 약일 수도 있고 독일 수도 있다. 매니지먼트에 상품으로 휘둘리다 자살에까지 이를 수도 있지만, 적절한 상업적 긴장은 오히려 창조성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서태지는 2집까지의 성공으로 매니지먼트에 의한 규제로부터는 해방됐을 것이다. 이럴 때 대중예술인은 오히려 무너질 수 있다.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소수만의 몫인 법이니까. 서태지는 자신이 그 소수에 속하는 사람임을 3집으로 증명한다.


내 기억으로 서태지와아이들 3집 컴백쇼는 KBS에서 이루어졌다. 2집 컴백쇼는 MBC였던 것 같다. 3집 컴백쇼 때 내가 확인했던 건 한국 방송국이 기타 소리를 잡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기타 소리를 내보내지 않는 불문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타리프는 불온한 락의 그것이었으니까.


컴백쇼에서 '교실 이데아'를 들으면서 난 그 노래가 무반주 랩인 줄 알았다. 음반을 사서 들어보고 나서야 이 랩이 강력한 스레쉬 메탈 리프 위에 실렸다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 방송국은 전통적인 멜로디 위주의 기타소리는 잡아냈지만 스레쉬 메탈 리프는 전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서태지 이후엔 그런 일이 없어졌다. 이런 대목에서도 서태지 이전과 이후가 갈린다. 그 스레쉬 메탈이 얼마나 생경했던지 악마의 음악이라는 소동까지 벌어졌었다.


서태지는 그 후 얼터너티브와 갱스터랩을 경유하고 하드코어로 넘어갔다. 서태지가 하드코어로 넘어갔을 때 미국 대중음악의 뒷북을 친다는 경멸의 말들이 있었다. 그런 식이면 우리나라에서 큰 소리 치는 인문사회 지식인들은 고개를 떨궈야 한다. 그들은 서양학문을 중계하는 걸로 먹고살고 있으니까.


서태지는 분명히 한국 대중음악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자신의 행보가 그대로 역사가 되는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다. 서태지는 위대하다.


단지 내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서태지를 보면 웬지 답답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너무 머리가 좋은가? 너무 조직적인가? 자유분방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게 계산된 것 같다. 자기가 좋은 것만을 한다기보다 남을 항상 의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서태지 속에 있는 진짜를 보고 싶다. 서태지가 스스로 미쳐버릴 것 같은 그것, 그런 게 보고 싶다. 지금 정도의 연륜이면 그 정도 할 때도 된 것 같다.


앨범을 낼 때마다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전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외국의 대가들은 평생 동안 자기가 익히 해오던 음악만을 하며 잘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악스타일도 옷차림도 수십 년 동안 그대로다. 새 앨범 발표가 깜짝쇼처럼 돼선 보는 나도 긴장되고 당사자도 중압감을 느낄 것 같다. 그냥 편하게, 부담 없이 음악을 하는 서태지가 보고 싶다. 이제는 살아있는 역사 따위 안 해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