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비자금, 불법영업 및 로비 파문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엔 또 삼성 내부의 로비지침이라는 문건이 공개됐다. 거기에 와인이 나와서 내 눈길을 끌었다. 돈을 안 받는 사람에겐 고급와인을 선물하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와인이 뜨긴 뜨나보다. 와인에 대한 상식이 모자라 스트레스 받는다는 경영인들도 많다고 한다.


난 와인 가지고 사교할 일은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그럴 필요가 있는 분들에게 권할 만한 영화가 있다. 바로 제77회 아카데미 영화제 각색상 수상작인 <사이드웨이>다. 상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영화의 수상내역을 살펴보자.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각본상

뉴욕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L.A.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보스턴 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앙상블 캐스트상

플로리다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조연상

토론토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사우스이스턴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남우조연상, 각색상

오포르토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정신이 하나도 없다. 미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만세를 불렀나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명작의 아우라가 철철 흘러넘치는 각 잡힌 영화는 아니다.


문득 <델리카트슨> 생각이 난다. 옛날에 <델리카트슨>이 개봉됐을 때 영화사측에선 이 생소한 프랑스 영화를 팔기 위해 <델리카트슨>의 엄청난 수상내역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었다.


극장에서 <델리카트슨>을 상영할 때, 본 영화 전에 파란 무지화면에 수상내역을 쭈욱 스크롤해서 올렸다. 오호, 불쌍타 한국관객이여. 당시는 아직 한국인들이 엄숙주의의 순진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90년 즈음, 엄청난 수상내역에 긴장한 관객들은 “헉! 이 영화는 예술영화이신갑다.”하며 곧 예술명작 감상모드로 전환해 각을 잡았다.


요즘이야 발칙한 네티즌이 있어 평론가고 영화제고 우습게 여기지만 옛날이야 어디 그랬던가. 국제 영화제 트로피 하나면 납작 엎드려서 날 잡아 잡수~하고 목을 내밀던 그 시절.


각 잡은 관객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온 건 <델리카트슨>이 시작되고 한참 후였다. 명작감상모드로 심각하게 작품을 분석,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려던 관객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그 영화가 뒤죽박죽 코미디라는 걸 눈치 챈 것이다. (나와 내 친구가 자꾸 폭소를 터뜨려, 그 웃음소리가 극장 안의 긴장감을 그나마 일찍 해소한 것인지도 모른다.)


“뭐야, 코미디인가? 웃어도 되는 건가”하면서 각 잡혔던 자세가 풀린다. 엄청난 수상내역에 주눅 들었던 감성지각이 살아난다. 등을 편안히 기대고 팝콘에 손이 간다. 영화를 심각하게 해석하려는 자세에서 가볍게 느끼는 자세로 모드 전환되는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사이드웨이>도 저 수상내역에 주눅 들거나 지레 겁먹고 경배를 바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단지 어느 추레한 장년기 남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품일 뿐이다. 이야기와 함께 흐르는 작품의 정취를 느끼면 그만이다. 캘리포니아의 햇볕과 와인과, 재즈와, 그리고 두 남자의 이야기를 마치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그 풍미를 음미하듯 그렇게 맛보면 된다.



와인과 재즈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배우는 와인잔을 찰랑거리고 영화 내내 재즈는 귓가에 살랑거린다. 영화를 보고나면 ‘피노’라는 포도 이름이 머리에 맴돈다. 상을 몰아준 미국의 평론가들은 아마 와인과 재즈가 주는 쿨한 고급문화적 자극에 매혹된 것 같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고급관객의 문화적 허영심을 건드린다고나 할까.


이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피노’라는 단어는 그해 헐리웃이 만들어 낸 유행어 1위에 뽑혔다. 무던히도 많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가서 ‘피노’ 와인을 찾은 것 같다. 이 영화로 캘리포니아 와인 농장이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여기 지지리 궁상 바가지인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마일스. 그에겐 현재가 없다. 오직 과거의 추억과 미래에 대한 몽상만 있을 뿐이다. 헤어진 옛 부인을 추억하고, 자기의 소설이 출판될 것을 꿈꾸고, 옛 부인과 다시 결합해 멋지게 와인을 함께 마실 꿈을 꾼다. 현재? 그런 건 모른다. “난 지금의 내가 싫어.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냐. ‘지금’은 될대로 되라지.” 술 퍼먹고 늦잠이나 자는 인생.


그렇다. 그는 폐인이다.(이 영화의 감독은 알렉산더 페인이다. ^^) 우리나라 폐인의 대명사는 인터넷 햏자들이지만 그는 와인 햏자다. 비록 툭하면 고주망태가 되고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엄마의 용돈을 훔쳐 쓰는 추레한 처지지만 와인에 대해서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고급취향을 자랑한다. 그는 소믈리에(포도주 감정가) 못지않은 능력의 소유자다.


와인을 음미할 땐 와인을 따른 잔을 빛에 비춰보아 그 색조와 투명도를 보고, 잔을 기울여 가장자리의 색을 보고, 마시기 전에 향기를 먼저 깊이 맡고, 잔을 찰랑찰랑 흔들어 와인의 풍미를 더 깊게 하고 마신다는 따위의 지식들을 잘도 안다.


영화는 마일스와 그의 친구 잭이 캘리포니아의 포도 농장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잭의 결혼을 앞두고 두 남자가 마지막으로 우의를 나누는 여행이다. 마일스는 잭에게 와인에 대해 알려주고 농장의 따스한 정취를 느끼게 하고 싶다. 그러나 잭이 원하는 건 고상한 와인 품평이 아니라 결혼 전에 마지막으로 여자와 즐기는 거다.


우유부단하고, 지성적이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마일스에 비해 잭은 동물적 본능, 열혈 그 자체인 사람이다. 마일스의 와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따서 마시는 잭, 질색하는 마일스. 두 사람의 성격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당연하게 여행지에서 잭은 좌충우돌 사고를 치고 마일스는 곤경에 빠진다.


영화상에서 마일스가 좋아하는 피노는 마일스라는 캐릭터의 은유다.


“피노는 껍질이 아주 얇은 포도라서 지속적인 햇볕과 습기는 안 좋아하거든 아주 민감하지.”

“왜 그렇게 피노를 좋아하죠?”

“재배하기 힘든 포도구요, 껍질도 얇고 온도변화에 민감하고 빨리 익고 까베르네 품종처럼 생존자가 아니에요. 아무데서나 자랄 수 있는 안 돌봐줘도 잘 자라는. 그런데 피노는 항상 돌봐주고 관심을 줘야 해요. 사실은 감춰진 구석구석에서만 자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오직 인내심과 사랑이 있는 그런 사람만이 피노를 가꿀 수 있죠... 피노의 잠재력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을 쏟은 사람만이 피노의 진정한 맛을 끌어낼 수 있어요. 그리고는... 그 맛은 가장 잊혀지지 않는, 빛나는, 소름끼치게 하는, 미묘한... 지구 최고의 고대 시대라 할까. 까베르네도 역시 강하고 신나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에겐 무미건조하게 느껴져요.”


빨리 익고 강한 맛을 내는 까베르네는 바로 잭의 성격이다. 잭은 까베르네 와인을 시음하는 농장에서 빨리 익고 강한 사랑을 할 여행지의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에겐 역시 피노 같은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당연히 마일스의 파트너. 그녀는 마일스에게 끌리고 마일스 역시 와인에 예민한 미각을 지닌 그녀에게 끌린다.


“와인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견고해지죠. 절정에 다다를 때까지. 그러다 절정이 지나면 피할 수 없는 타락이 시작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맛이 정말 끝내주죠(so fucking good)."


그녀의 와인 예찬이다. 우리의 소심한 마일스 씨, 여행지에서 천생연분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머뭇머뭇, 잭의 까베르네 같은 사랑을 못한다. 와중에 잭은 또 사고를 치고. 그렇게 좌충우돌하는 잭이지만 그도 마일스와 공통점이 있다. 잭 역시 마일스처럼 ‘현재’ 없이 과거와 몽상 속에서만 사는 사람이다.


마일스의 소설 제목은 ‘어제 다음 날’이다. 오늘이 없고 시간이 어제에 고착돼 있다. 잭도 과거 자신이 티비 탤런트를 했던 시절의 인기에 매여 있다. 마일스는 책이 출판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잭은 자신의 결혼이 잘 하는 짓인지 확신이 없어 두렵다.


과거에 묶여있고 두려움과 자격지심에 빠져있는 그 두 남자는 아직 현재의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현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책임 있는 주체가 될 수 없고, 당연히 사랑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그리하여 그 둘은 적극적인 잭이나, 소심한 마일스나 할 것 없이 사랑에 성공할 수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수도 없다. 그저 허공에서 허우적댈 뿐.


이 불안한 두 남자는 여행을 통해 피노 와인처럼 성숙해간다. 영화는 그들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이런저런 에피소드에 담아 풀어가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빛나는, 소름끼치게 하는” 자극을 선사하진 않는다. <사이드웨이>는 그들이 ‘절정’에 다다르는 여정까지만 보여준다. 그들이 마침내 현재의 문을 열고 자신의 삶에 온전히 섰을 때, 그들의 인생은 정말 좋은(so fucking good) 것일까? 그걸 누가 알랴. 그저 살아갈 뿐인 것을.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 같은 재미도 없거니와 명작의 장엄한 감동도 없다. 그런 므흣한 기댈랑은 마일스가 일생일대의 로망이었던 1961년산 ‘슈발 블랑’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버리는 게 좋다. 그러나 슈발 블랑의 로망을 버리자 현실에 발이 닿는다. 므흣한 기대만 버린다면 이 작은 영화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혹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와인을 사러 달려가는 수고를 덜려면 미리 와인을 준비해두고 영화를 보는 센스(^^)도 필요하다. 이 영화를 보면 누구라도 와인이 생각날 것이니까.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