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청춘 영화가 사라진 것 같다. 옛날에 얄개 시리즈가 있었고, <진짜 진짜 좋아해>라던가, 그 뭐드라? 병태 나오고 고래 잡으러 동해로 가는 영화같은 것도 있었고, 80년대로 넘어와선 <고래사냥>이랄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같은 것도 있었다. 서세원의 대재난작 <납자루떼>도 이런 분위기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요즘에 들어선 생각나는 것이 없다. 어차피 현실이 암울한 건 그렇다고 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다는 이유만으로,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그런 느낌, 그런 영화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본은 고만고만한 청춘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것 같다. <핑퐁>이랄지, <스윙걸즈>랄지, <워터보이즈>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청춘영화도 중독성이 있어서 너무 굶으면 생각이 난다. 일본 청춘영화엔 묘한 매력이 있다. 입에 달고 살 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가끔은 당기는 간식거리 같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체케랏쵸>는 압권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영화 자체가 엄청나게 재밌는 것은 아니다. 재미의 수준으로 보면 <핑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핑퐁>을 본지가 오래 되서 잘 모르겠다. <체케랏쵸>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바로 하늘이 파랗다는 것이다! 바다는 푸르고 청춘도 푸르다. 환호성과 폭우를 뚫고 밴드의 음악이 질주한다.


체케랏쵸가 무슨 뜻인가 하면, 영어 "Check it out, yo!!"를 발음한 것이다. Check it out, yo가 체케랏쵸란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영화인가. 아무 생각 없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용서가 된다. 햇살은 눈부시고 바다는 파라니까. 청춘이니까.


나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 청춘을 회고할 때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음치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도 밴드생활을 한번쯤은 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밴드 만드는 영화인 <체케랏쵸>에 더더욱 감정이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음악도 좋다. 요사이 몇몇 일본 음악을 들으면 무서워진다. 우리는 무슨 '따블에스오공일'이니 '동방신기'니 하고 있는데,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얼마 전에 어떤 대중음악 연말시상식을 보면서 참담한 심경이 들었다. 무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른바 대한민국 대표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이건 아니잖아" 소리가 절로 나왔었다. 암튼 우리는 무슨 '따블에스오공일'이니 '동방신기'니 하고 있는데 일본 음악은 벌써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다.


들국화와 이문세가 라디오 청취율에서 팝을 이기고 서태지와 넥스트가 나와 사운드의 질에서 팝을 따라잡은 것이 벌써 십년도 훨씬 전의 일인데 그 후로 우린 발전이 없다. 발전은커녕 퇴보일로다. 일본은 이제 팝을 완전히 소화하고 독자적으로 진화하는 단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난 가끔 일본 노래를 들으면 배가 아파진다.


다행이 배 아프게 하는 일본 영화는 별로 없다. <체케랏쵸>는 그냥 즐거울 따름이다. 오끼나와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나오는 푸른 청춘들이 이제 갱년기를 향해 질주하는 날 눈부시게 한다.


이 영화에서 인기 인디뮤지션으로 나오는 배우는 영화 속에서 정규 직업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만으로 돈을 벌면서 저 좋을 대로 사는 ‘프리터족’이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여자에게 나서지 못한다. ‘체케랏쵸!! 무대뽀 청춘이즘’에 위배되는 소심증이다. 그 소심증이 어떻게 ‘체케랏쵸’ 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일이지만 난 그것을 보면서 ‘체케랏쵸’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 인디씬에 있는 청춘들은 그 프리터족의 처지도 못되어 일본의 프리터족들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정규 레일에 진입하지 못하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척박함이 우리나라의 청춘들을 ‘체케랏쵸!!’하지 못하게 한다. 일본 오키나와의 하늘은 푸를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하늘은 잿빛인 것 같다. 그러니까 '따블에스오공일'이나 나오지.


도대체 우리나라처럼 어렸을 때부터 사람에게 서열을 강제하고 극소수를 제외한 절대 다수에게 패배자 낙인을 찍어 성년을 맞게 하는 선진국이 어디 있나 싶다. 그리고 곧바로 시작되는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정규직 트랙으로 내동댕이처져 ‘체케랏쵸!!’는 꿈도 못 꾸는 회색 인생을 시작한다.(여기서 비정규직이라 함은 중소기업 정규직도 포함하는 상징적 의미) 이놈의 나라엔 '틈'이 없다. 숨이 막힌다. 하늘이 파래도 파란 것을 느낄 수 없다.


문화는 여유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인데 이렇게 바득바득 악을 써야 생존하는 대한민국에 무슨 ‘체케랏쵸!!’가 있을소냐. 일본도 구조조정을 통해 1억 총중류 사회가 붕괴하면서 중산층이 하류로 전락해가 ‘체케랏쵸!!’ 분위기는 차츰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은 ‘체케랏쵸!!’하고 있는 것 같다. 청춘영화들이나 소소한 일상사를 그린 드라마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분명 1억 총중류 사회의 성과다.


반면에 우리는 국가공동체 같은 건 애저녁에 파괴된 지 오래다. 국민은 단지 구조조정의 대상일 뿐이고 구조조정으로 형성된 국익은 소수 기득권층이 낼름낼름 다 먹어치우고 있다. 뭐 먹고 살 만해야 ‘체케랏쵸!!’가 나오지. 그저 나오느니 경찰타살이요 터지느니 비관자살이다.


일본 1억 총중류 사회의 흔적이 오늘날 일본인들이 향유하는 다양하고 섬세한 문화다. 그런 일본에 이제 하류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우리도 6.25 직후엔 수천만 총류 사회였다. 하지만 그땐 다 같이 가난한 총하류 사회였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 이제 진짜로 중산층 총류 사회로 진입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린 하류사회로의 해체를 시작했다.


얄궂은 건 일본의 총중류 사회 해체는 기득권 과두 집단이 스스로 집행하지만 우리는 민주화 세력 주류가 집행하고 있다는 거다. 군사독재 타도한다고 정권 잡아서 부패구조 해체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10여 년 만에 중산층 총류 사회로의 가능성까지 해체하고 있다. 요즘 누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인식하겠나? ‘체케랏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주가 올라간다고 아무도 ‘체케랏쵸’하지 않는데 개혁정권만 살 판이 났다. 수출도 잘 되고 기업들 경영 실적도 좋아지고 조중동만 아니면 호시절이라고 그 동네에는 ‘체케랏쵸’ 기운이 넘쳤다. 그러자 국민이 등을 돌렸다. 분노와 절망, 원성이 사위에 가득하다. 잿빛 하늘이다.


중산층 총류 사회가 문화 융성의 토대다. 하류사회로 전락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꿈? 문화? 사치에 불과하다. 하류사회에선 ‘sm엔터테인먼트’ 류만 창궐한다. 입시지옥과 생존위협은 ‘체케랏쵸’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전한 공무원 되는 게 젊은이들의 최고 소망인 나라가 됐다.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인생 뭐 있나. 이 영화 보면서 잠시라도 떼굴떼굴 쌓인 불평불만을 잊을 수 있다. 하늘이 파라니까. 바다가 푸르니까. 청춘도 푸르니까. ‘체케랏쵸!!’ 예~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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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이거 보면서 왠지 청춘이 그립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