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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태도와 프레임

 

 ‘프레임‘은 사고의 틀, 마음의 창과 같은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혹은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다. 그 하나의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프레임의 차원에서 봤을 때 이곳엔 아주 많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N 명의 사람이 사는 곳엔 N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단일한 체계로 생각하고 소통하는 컴퓨터같은 존재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세상을 여러 개의 프레임이 중첩된 모호하고 복잡한 세상으로 만드는 건 인간의 주관성이다. 이 주관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히 객관적일 수 없다. 모든 인간이 객관적이라면 이 세상에 오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학습을 통해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려 하고, 타자와 객관적으로 소통하려 한다.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CPU, 램, 그래픽카드, 하드디스크, 랜카드, 메인보드 사이엔 객관적이고 분명한 기준이 있어 그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다. 그 단 하나의 기준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부품을 무한대로 바꿔도 커뮤니케이션에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도 처음 보는 사람과는 충돌을 빚는다. 아무리 한국어로 설명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인간이 저마다의 프레임에 의해 세상을 사는 주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레임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동시에 프레임은 인간을 구속한다. 프레임에 의해 이 세상은 마치 N 개의 세상이 있는 것처럼 다중적이라고 했다. 그 얘기는 프레임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구성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프레임의 구속에 의해 그 중의 한 세상에 살게 된다. 이것은 프레임을 바꾸면 전혀 다른 세상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세상이 저마다의 프레임에 의해 구성된 ‘주관성의 총체‘라는 걸 직시하는 사람은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프레임과 타자의 프레임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된다. 프레임이 절대적 객관성의 영역이 아니라 임의적 주관성의 영역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자신의 프레임에 스스로 의심을 품고, 때로는 프레임을 바꿈으로서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에 대한 태도가 달라짐으로 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자신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인격을 풍부하고, 여유롭고, 안정되게 만들 것이다.


 프레임의 존재를 모르고 이 세상이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단 하나의 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완고한 태도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태도를 바꾸기도 힘들고, 남의 태도를 이해할 관용성을 갖기도 힘들다. 자신의 프레임 속에서 형성된 가치기준을 객관적인 단 하나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가 하는 말은 그와 비슷한 프레임을 공유하는 사람들하고만 소통될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대립, 소통불능 현상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지 못하는 불관용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무언가를 얻으려 노력한다. 또 무언가를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좋은 것을 접하면 좋아하고, 싫은 것을 접하면 싫어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 세상이 변하길 원한다. 이런 것들이 태도다. 하지만 자신의 태도 근저에 한낱 임의적인 주관성에 불과한 프레임이 있고, 그것이 자신의 태도를 결정했다면, 우린 무언가를 원하고, 무언가를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을 주장하기 전에 자신의 프레임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소유의 프레임에 구속된 사람이라면 그는 언제나 무언가를 더 소유하려 노력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자신의 소유물이 늘어나면 행복하다고 느끼고, 소유물이 줄어들면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기존에 소유한 것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데 큰 불편이 없는 수준이어도, 더 많이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원통해하고, 자신보다 남이 더 많이 소유한 것에 분통터져할 것이다.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그의 눈엔 자신이 아직 소유하지 못한 세상이 보일 것이다. 소유가 가장 중요하므로, 자식 사랑도 자식의 소유물을 보다 늘려주는 쪽으로 표현할 것이다. 자식이 소유가 아닌, 예컨대 사랑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코웃음 치며 소유를 늘리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단 하나의 행복이라고 자식을 윽박지를 것이며, 자식과 일전을 불사할 것이다. 의도가 관철되지 않으면 단식을 하거나, 스트레스로 병이 들거나, 자식을 버릴 것이다. 자신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일체의 타인을 적대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보다 더 많이 소유하려 고민하며 안달복달할 그 에너지를 잠깐이라도 프레임 자체에 대한 성찰에 돌린다면? 그래서 소유가 아닌 존재의 프레임으로 자신의 프레임을 바꿔버린다면? 그 순간 그의 인생은 천지개벽을 맞게 된다. 당장 은행잔고와 부동산 문서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뀐다. 자산이 늘건 말건 무의미한 일이 되고, 자식이 사랑을 찾는 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사건이 된다. 주식시세표 볼 시간에 자신의 존재를 보다 충실히 할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신분질서라는 프레임에 구속된 사람은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상상도 할 수 없다.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유생들은 장영실을 중용하려는 세종대왕에 맞선다.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들의 신분실서 프레임에 위배된다는 것. 그러나 그 프레임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나?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에도 언제나 그 근본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프레임을 바꾸면 아무 것도 아닐 일 때문에 남과 싸우고, 집착하며 한 평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로미오와 줄리엣 양쪽 집안 사람들이 가문의 명예라는 프레임에 의심을 품었다면, 꽃다운 청춘이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


 프레임이 개인의 인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프레임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작동한다. 예컨대, 한국사회는 학력주의, 학벌주의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 이것은 학력, 학벌을 극히 중시하는 사회적 태도를 만들었고, 그에 따른 차별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당대의 최고 전문가들이 학력위조사범으로 줄줄이 적발되는 불명예를 당했다. 만약 한국사회가 학력주의, 학벌주의 프레임이 아닌 능력주의 프레임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였다면 전문가들의 학력위조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레임이 바뀌면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사회도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한국인이 학벌 간판을 따기 위해 입시경쟁에 몰두하다 자살까지 한다. 고교생의 20%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고, 5% 이상이 자살을 실행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사교육비 부담은 말할 것도 없다. 학벌주의 프레임이 사라지는 순간 이 모든 일들이 꿈처럼 느껴질 것이다. 학벌주의 프레임이 아예 없는 서북유럽인들은 입시경쟁이란 걸 상상도 못 하면서 살고 있다. 같은 지구에서 살지만, 서북유럽인들과 한국인은 사실상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 이것보다 엄청난 변혁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이것이 사회적 프레임의 교체에 의해 가능하다는 얘기다.


 개인적 차원에서도, 사회적 차원에서도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프레임을 의심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태도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태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을 전개하기 전에, 먼저 나와 타자의 프레임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프레임을 ‘절대적 위치’에서 ‘상대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프레임을 바꿀 수 있고, 전혀 다른 태도, 전혀 다른 인생, 전혀 다른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재구성할 힘을 가진 개인과 사회가 진정 강하고 건전한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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