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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백민정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뮤지컬 배우 백민정이 SNS에 올린 글로 인해 결국 6회 출연 정지 조치를 당했다.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네티즌의 여론은 더 무섭다. 6회 정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영원히 사라지라는 저주가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배가 불렀느냐’,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아예 그만 둬라’, 이런 식의 반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백민정은 일하기 싫다고 한 적이 없다. 그녀는 공연하기 싫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공연 끝나고 피곤한 상황에서 사인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힘들다고 말했을 뿐이다. 대중문화예술인은 관객과 작품으로 만난다. 최고의 작품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인회는 부수적인 이벤트일 뿐이고, 그것이 배우를 피로하게 한다면 충분히 일정 조절도 할 수 있다. 공연 후에 사인회하기를 힘들어한다고 해서 관객을 무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객에 대한 예의와 공연 직후 사인회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관객을 진정으로 무시하는 건 공연에 무성의하게 임할 때다. 공연에 열정적으로 임해 에너지가 다 소진됐다면 그것으로 관객에 대한 예의는 다 한 것이다. 관객이 요구하는 것이 열정적인 예술가인가, 아니면 자기들 앞에서 방긋방긋 웃어주는 감정노동자인가? 전자라면 사인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백민정이 공연 후 이어지는 사인회에 대한 피로감을 표명했다고 해서, 그것을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라고 규정할 순 없다. 그녀의 일은 공연이지 사인회가 아니니까. 게다가 사인회가 무조건 싫다는 것도 아니고, 공연 직후엔 힘들다고 했을 뿐이다. 그저 계속 되는 일정에 힘들어서 푸념을 한 정도인데, 우리 사회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아닐까?

 

백민정의 잘못은 SNS에 그런 개인적 푸념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이제 유명인의 SNS는 더 이상 개인적 푸념이나 뒷담화가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요즘 매체나 사람들은 유명인의 SNS에 ‘대국민 담화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SNS는 점점 사회적으로 극히 민감한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 민감성을 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사태가 터진다. 티아라가 정상적인 국내활동을 못하게 된 것이나, 아이유가 국민여동생 타이틀을 놓치게 된 것이 모두 SNS와 관련이 있다. 얼마 전 아이비도 SNS에 개인적인 푸념을 했다가 크게 비난 받았고, 기성용의 개인적 뒷담화는 국민적 비난을 초래했다.

 

우리 사회가 유명인의 SNS에 지나치게 민감해진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한데,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젠 유명인들이 SNS를 사적인 푸념이나 뒷담화용으론 더 이상 사용해선 안 된다.

 

 

현역스타들은 대중문화예술 종사자로서 대체로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수 국민을 상대로 즐거움을 주는 일에 종사한다. 그런 이들이 푸념을 자꾸 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싫어하는’, 즉 일하기 싫어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시대에 ‘배가 부른 건방진 태도’로 인식돼 척결 대상으로 찍힌다. 또, 현역 스타들은 나이가 비교적 어리기 때문에 주변인에 대해 뒷담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어른을 조롱하는 건방진 어린 놈’이 되어 국민 비호감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대중은 대중 앞에서 끝없이 겸허하고 성실한, 열정적인 스타를 원한다. 딱 유재석을 떠올리면 되겠다. 유재석이 SNS에 ‘요즘 무한도전 촬영 너무 힘들다. 귀찮다.’ 이런 글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유재석은 철저히 ‘이렇게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 웃겨드리겠습니다’는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게 이미지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대중은 이런 이미지를 사랑하는데, SNS에 아무렇게나 툭 던지는 푸념은 이런 이미지와 상반되기 십상이어서 구조적으로 문제다.

 

임혜영이 억울하게 됐다. 그녀는 단지 힘들다는 표정의 사진을 같이 찍었을 뿐인데, 그것이 백민정의 말과 함께 SNS에 올라가면서 더 부정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징계까지 받게 됐다. SNS는 이렇게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죽이는 칼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자폭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SNS를 하겠다면 순수하게 자기 이야기, 자기 사진만 올려야지 남까지 끌고 들어가선 안 된다. 이젠 손가락 조심해야 하는 시대라는 점을 명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