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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스플래시 폐지, 클라라 박명수는 욕먹어야 했을까

<스플래시>가 결국 조기종영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봉원이 안와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그 전에도 이 프로그램에선 출연자들의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졌었다. 이렇게 위험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에 대해 제작진과 방송사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 제작진만의 문제일까?

 

<스플래시> 초반에 클라라가 출연했었다. 당시 클라라는 허리부상을 호소하며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다이빙도 멋지게 하지 못했다. 그전까지 연예인이 TV에서 보여주던 일반적인 다이빙, 즉 낮은 높이에서 안전하게 발부터 떨어지는 자세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자 비난이 터져나왔다.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연습하고 고난도의 자세를 선보인 임호나 고막에 통증이 있고 더 악화될 위험이 있는데도 귀마개를 빼고 다이빙한 여홍철, 마치 선수 같은 자세를 선보인 권리세, 그리고 혼신을 다한 도전으로 눈물을 보인 주부 조은숙 등의 ‘투혼’과 대비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클라라가 성실하지 못하다며 비난했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연예인 부상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시청자들이 연예인에게 끝없이 ‘밀어붙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그런 요구에 부응하고, 결국 사고는 예정된 것이었다.

 

 

곳곳에서 도전정신, 투혼 등이 찬양받고 있다. 자기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에 시청자가 감동받는다. 그렇게 극한까지 밀어붙이다보니 요즘엔 연예인들이 TV 속에서 잘 운다. 과거엔 토크쇼 중에 슬픈 일을 회상하며 울었었는데, 요즘엔 리얼예능에서 한계에 도전하다 운다. 성공하면 성공해서 울고, 실패하면 실패해서 운다. 그만큼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다. 그 모습에 시청자도 함께 운다. 그리고 찬사와 시청률이 터진다.

 

하지만 연예인이 왜 투혼을 선보여야 하는 것일까? 왜 고통스럽게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이 예능, 즉 사람들의 재미거리가 돼야 하는 걸까? 타인의 고통을 보면 인간으로서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불편감보다는 재미만을 느끼고, 고통과 위험을 회피하려는 연예인을 질타하는 경향이 있다.

 

위험신호는 2010년 <무한도전>의 레슬링 도전 때 이미 켜졌었다. 레슬링은 다이빙 이상으로 위험한 운동인데, <무한도전>에선 연예인들이 그것에 도전했다. 그 전까지 예능에선 보통 레슬링 하루 체험 정도로 끝냈는데 <무한도전>은 아예 레슬링 경기를 기획했다. <스플래시>와 비슷한 궤적이다.

 

당시 체력이 뛰어난 유재석 등은 레슬링 기술을 빠르게 연마해 네티즌의 찬사를 받았다. 정준하와 정형돈의 투혼이 감동을 주기도 했다. 반면에 머리를 바닥에 찧는 사고를 당한 후 위험한 기술을 회피한 박명수에겐 비난이 쏟아졌다. 불성실하다는 것이다.

 

위험을 회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능으로, 즉 재미를 주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면 오히려 시청자가 나서서 말려야 한다. 하지만 시청자는 위험 회피하는 연예인을 비난했고, 단기간에 프로선수 같은 기량을 선보인 연예인 그리고 고통과 위험을 무릅쓰는 연예인에게 찬사를 보내기에만 바빴다.

 

타인의 고통을 그저 쇼로, 재미거리 정도로 여기는 세태. 이런 상황에서 제작진은 대중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연예인의 고통을 기획할 수밖에 없고, 연예인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고통을 자처하게 되며,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당시에 ‘레슬링 도전은 예능 도전의 수위를 다른 차원으로 올려놨다 ... 이번에 엄청난 찬사를 받는 것을 보며 다른 예능 제작진들이 분발한다면 연예인들은 정말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라고 썼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최근 <진짜사나이>에서 연예인들이 유격훈련 받는 모습이나, 미르가 허리 고통을 호소하며 훈련 받는 모습을 볼 때도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인지상정’은 작동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다고 감동적이라고만 반응했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태만한 사람이 없을까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바쁜 분위기다. 걸리면 가차없이 욕을 먹는다. 클라라, 박명수처럼 말이다. 이런 속에서 제작진은 안전불감증에 빠질 수밖에 없고, 연예인은 위험을 감수하며 ‘한계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스플래시>는 끝났지만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