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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명량, 배설은 어떻게 악인이 되었나

 

 

<명량>에서 배설이 지나치게 악인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경주 배씨 문중이, 역사 왜곡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국민권익위에 관련 민원을 접수한데에 이어 추석 연휴 직후 경찰에 고소장까지 제출할 예정이라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명량>에서 이순신 암살을 시도하고, 마지막 남은 거북선에 불을 지른 후 도망치다 안위의 화살에 맞아 죽는 인물로 그려졌다. 문제는 이것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란 점이다. 이런 묘사로 인해 배씨 문중의 후손들이 ‘인터넷에서의 악성 폄훼 비하 발언으로 정신적 충격에 빠졌고 앞으로 자녀들이 학교, 군대, 사회 등에서 조롱과 왕따를 당할 우려가 있다’는 항변이다.

 

<명량>은 이순신 장군을 위대한 영웅으로 그려 관객의 갈채를 받은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순신의 위대함에만 집중하는데, 그것을 위해 상대적으로 다른 장수들이 모두 비루하거나 악한 인물로 그려졌다. 특히 배설은 그중에서도 비루하며 동시에 악하기까지 한 최악의 인물로 그려졌다. 무서우면 혼자 도망가면 될 일이지 왜 이순신 암살을 시도하며 거북선에 불까지 지르는지 도무지 합리적으로 해석이 안 되는 초악역 캐릭터다.

 

 

이순신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굳이 다른 장수들을 모두 비루하게 그릴 필요는 없었다. 다른 장수들이 비루해지지 않아도 이순신 장군은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 다른 장수들까지 긍정적인 인물로 적극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면 <명량>은 작품성에 있어서도 상찬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의 <명량>은 이순신의 위대성 때문에 감동적이긴 하지만 작품성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정도전>은 정도전을 위대하게 그리기 위해 이인임을 비루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았다. 거꾸로 적극적인 재해석을 통해 이인임을 중요한 정치 거물로 그렸는데, 그렇게 이인임의 크기가 커진 것이 전혀 정도전의 위대함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인물들의 풍부한 묘사로 인해 작품의 가치가 더 올라갔을 뿐이다. <명량>은 오로지 ‘이순신 만세’인 단순한 구성이어서 <정도전>과 대비된다.

 

역사에 있는 그대로만 그려도 ‘이순신 만세’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아쉬운 건 <명량>이 지나치게 과장을 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순신 원맨쇼 백병전과 함께 배설의 악인화다. 이런 설정들이 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이순신 성웅화를 위해 배설이 희생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씨 문중이 상영중지 운운하는 것은 과하다. 이순신을 영웅으로 그리기 위해 배설이 과도하게 악인으로 그려진 것은, 작품을 유치하게 만들어 작품성을 깎아내렸다는 차원에서 아쉬운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사극의 묘사로 인해 후손들이 피해를 봤다며 들고 일어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역사 소재물의 자유로운 창작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창작물을 창작물로 유연하게 보지 못하고 문중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명량>의 ‘이순신 만세’보다 문화적으로 더 유치한 행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대사 하나 가사 한 마디까지 따지고 들었던 당국의 ‘째째한’ 태도는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렇게 작품의 표현을 두고 이런저런 집단이 왈가왈부한다면 창작자들은 위축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손해로 귀결된다.

 

따라서 문중이 고소까지 해가며 제작진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문화 콘텐츠를 바라보는 보다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극중 배설처럼 아예 역사에도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을 표현하려면 처음부터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켰어야 하지 않나라는 아쉬움은 있다. <명량> 후속편만은 부디 ‘이순신 만세’ 그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