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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명량의 황당한 흥행,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주다

 

<명량>이 12일 만에 천만 달성에 이어 21일 만에 1500만 돌파라는, 황당하기까지 한 대기록을 세웠다. 이런 흥행은 아마도 다시는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거의 21세기판 ‘자발적 새마을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범국민적 흥행 열기가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록이다.

 

이 엄청난 사태의 원인은 당연히 이순신이다. 한국인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영화는 이순신 장군을 직접 칼 들고 싸우는 과장된 히어로로 그리면서 한국인의 기대에 부응했다. 다른 인물들, 풍부한 스토리를 모두 희생하고 오직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에만 집중했다. 단순한 스토리와 거친 편집으로 인해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관객이 기대한 건 영화적 완성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흥행엔 지장이 없었다. 전투씬의 장쾌한 스펙터클과 장중한 음악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순신 캐릭터가 장군의 숭고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헌신으로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은 한국인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영화는 한국인이 보고 싶어 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그렸고, 한국인은 영화 속에서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영화는 단순하지만 한국인의 머리 속엔 이미 이순신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관객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이순신의 이미지를 영화에 투사해 보다 풍부한 이순신의 상을 만들어냈다. 영화를 보고 나선 실제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보고 더욱 감동을 키워나간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한국인이 가장 이순신을 기다렸던 그때 <명량>이 찾아왔다. 이미 준비된 이순신 신드롬, 영화는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줬다.

 

 

 

 

- 위대한 지도자 이순신 -

 

이순신 신드롬이 본격화된 건 2004년작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때부터였다. 물론 그 전부터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이때부터 현대적 리더십의 모범으로 뜨거운 반향이 나타났다. 이순신이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진 것도 이때부터였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나약하기 때문에 더 숭고해보인다) 장쾌한 컴퓨터 그래픽 스펙터클도 이때부터 등장했다. <명량>은 한 마디로 ‘위대한 이순신의 기적적인 대첩을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 거대한 스케일로 구현’했기 때문에 신드롬을 일으킨 것인데, <불멸의 이순신>이 바로 그 원형이었다.

 

2000년대 초는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의 고통이 체감되기 시작하는 때였다. 참여정부 중반기엔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백가쟁명의 논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바로 그때 <불멸의 이순신>이 등장했다. 드라마 속에서 이순신은 양반의 기득권, 특권, 특혜, 양천 차별을 철폐한다. 지도층은 ‘이 나라는 저들(일반 백성)의 나라이기도 하오이다’라며 백성들을 총알받이도 내세우고 의주로 내뺐다. 반면에 이순신은 ‘이 나라가 어디 양민과 종복들만의 나라라던가’라고 하면서 양반들도 다 나와서 싸우라고 했다. 천민에게도 능력만 있다면 과거를 보게 하고 지휘복을 입혔다. 나라가 양극화, 즉 상하로 쪼개져나가는 시기에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는 드라마 속 이순신의 공동체형 리더십은 큰 찬사를 받았다. 이때부터 이순신 리더십은 21세기의 로망이 된다. 2014년에 국민들은 더욱 간절히 그런 리더십을 기다렸다.

 

이순신이 파직당한 건 어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선조가 부산을 치라고 했는데 이순신이 거부했다. 왕명을 따랐다간 부하들이 다 죽고 나라까지 망하게 되기 때문에, 이순신은 자기 혼자 왕명 불복으로 죽고 다른 이들을 살리려 했다. 반면에 원균은 자기가 역적 되지 않으려고 왕명대로 출정했다가 부하들을 전멸시켰다. 이순신은 전투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남해안 일대에 경제시스템을 일으켜 물자를 스스로 조달하고 백성들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그가 전사한 후 전라도 일대의 백성들이 마치 어버이를 잃은 듯 통곡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도 이순신 리더십 신드롬에 불을 댕긴다.

 

지금은 양극화의 문제가 더 심해진 가운데, 지도층에 대한 불신도 더 심화됐다. 현재 지도층의 이미지는 ‘자기들은 군대 안 가고 자식들은 이중국적’이라고 정리된다. 그래서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던 이순신 신드롬이 더 강해진다. ‘장수의 충은 백성을 향한다’라는 영화 속 대사가 화제다. 현재 지도층의 충은 백성이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을 향하며, 국민은 버림받은 존재라고 여겨진다. <명량>에서 이순신은 다른 장수들이 후퇴할 때 홀로 돌격해 적들 앞에 섰다. 이렇게 목숨 바쳐 백성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지도층에 대한 결핍도 이순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만들어냈다.

 

 

 

- 지도자 사극의 결정판 -

 

<명량> 사태는 최근 이어진 지도자 사극 인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사극은 단순한 권력 다툼 위주였는데 2000년대 이후엔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사극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불멸의 이순신>이 그 신호탄이었고,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선덕여왕>, <천추태후>, <뿌리깊은나무>, <광해>, <변호인> 등이 지도자 역사물로 인기를 끌었다. 올해엔 <정도전> 신드롬에 이어 이순신 신드롬이다.

 

사극의 주제가 ‘권력자’에서 ‘지도자에 대한 모색’으로 바뀐 건 지금이 지도자 부재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일단락된 후 한국은 지금 아노미의 상태에 빠져있다. 가치부재, 지도자부재, 미래불안, 총체적 혼란이다. 특히 초유의 저성장과 양극화가 국민의 불안을 극대화하고 있지만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미래, 그리고 한국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전망하는 국민이 점점 줄어든다. 과거엔 없었던 현상이다.

 

한국인은 지금 지도자가 고프고, 리더십이 고프다. 민주화 노무현, CEO 이명박, 산업화 박근혜 등 나름 기대를 가지고 선택했지만 혼란은 계속 이어진다. 지금 현재의 지도층에 대한 총체적 불신 때문에 과거의 지도자가 뜬다. 과거의 지도자에게 현재의 열망을 투사한다. 정도전은 기존 시스템을 전면 불신 뒤엎었고, 이순신은 기존 시스템으로부터 버림 받고 시스템과 별개로 백성을 지켰다. 현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정도전과 이순신을 초혼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명량>은 승리의 역사이기 때문에 더욱 큰 열기가 나타난다. 구한말 이후 한국인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중 하나는 열패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경제성장, 한류 등으로 그것이 많이 치유되긴 했지만 아직도 상처는 깊다. 우리가 유독 외국 반응에 민감한 것이 우리의 약한 자존감을 말해준다. 이순신은 최근 몇 백 년 역사상 가장 통쾌한 승리의 역사이고, 명량대첩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순간이다. 이 벅찬 순간과 이순신 장군의 숭고함이 의기소침해진 한국인에게 힐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