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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경실, 성추행의혹 사건에 끌려들어간다

 

이경실의 남편이 성추형 혐의를 인정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곧바로 이경실 측이 반박했다. 성추행을 인정한 것이 아니며, 악의적인 추측보도를 내는 건 이경실의 남편과 이경실의 명예를 떨어뜨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경실 측에서 굳이 이렇게 나설 이유가 있을까? 이 사건은 이경실과 전혀 상관없이 이경실의 남편과 고소인 사이에 발생한 분쟁이다. 해명을 해도 남편이 하고, 지탄을 받아도 남편이 받으면 된다. 이경실이 전면에 나설 이유가 없다.

 

이경실 소속사는 이미 사건 발생 초기에도 보도자료를 냈었다.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밝히고, 고소인에게 돈 문제가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주장까지 추가된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상황은 이상했다. 이경실은 문제의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날 일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소상히 해명한단 말인가?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는 점에서 이경실이나, 언론사 기자들이나, 일반 대중의 처지는 모두 같다. 진실을 모르는 처지라는 점 말이다. 이경실은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사에 추측보도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경실 본인은 왜 그날 일에 대해 추측을 넘어서서 단정하는 듯한 보도자료를 내는 걸까? 어차피 모르는 처지라는 점에선 다 똑 같은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의 억울함을 단정하며 그날 일을 마치 사실 진술하듯이 해명하는 이경실 측의 태도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사실 진술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제 3자 이경실이 아닌 당사자 본인이 했어야 했다.

 

  

이경실 측 초기대응에서 가장 문제였던 건, 이경실이 그렇게 자신 있게 나서자 이경실 본인이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것 같은 효과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후 고소인의 재반박은 이경실 주장에 대한 반박 형태를 띠게 됐다. 이경실 남편과 고소인이 싸워야 할 판에 엉뚱하게 이경실이 끼게 된 것이다.

 

이경실 남편은 성인으로서 자기 입장은 당연히 자기가 내야 하고, 이경실 남편의 변호는 이경실이 아닌 남편의 법적 대리인의 해야 한다. 이경실을 대리하는 소속사가 이경실의 일처럼 나설 이유가 없다. 이경실 소속사가 나서니까 정말 이경실의 일처럼 돼가고 있다.

 

그나마 처음엔 부인으로서 남편을 향한 인간적인 믿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인지상정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재차 이경실 소속사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니까 점점 더 이경실이 사건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이 경우 혹시라도 성추행이 맞는다는 판정이 나중에 나온다면 이경실이 당할 타격이 너무나 크다. 물론 남편의 결백이 증명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엄존하는 상황에서 이경실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지나치게 심대하다는 이야기다.

 

 

남편에 대해 인간적인 지지는 하되 이번 사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어차피 이경실도 진실을 모르는 사건 아닌가. 이경실 측에서 적극적으로, 공세적으로 나설수록 대중의 화살이 이경실에게 쏠리게 된다. 안 맞아도 될 화살을 맞는 것이다.

 

게다가 이경실 측은 사건 초기 보도자료에 이어 이번 보도자료에서마저 고소인 측과 관련된 돈문제를 암시했다. 심지어 이번 보도자료에선 고소인이 남편을 안하무인으로 대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경실이 더욱 당사자가 돼간다. 조용히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걸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의 무죄가 밝혀진다면 그때 가서 기뻐해도 늦지 않다.

 

이번 사건에서 우린 이경실 남편과 이경실을 분명히 분리해서 봐야 한다. 이경실 남편 일로 이경실까지 도매금으로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경실 측에서 오히려 두 사람이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비이성적인 상황을 자초하는 느낌이다. 대중의 차분한 대응을 이끌어내려면 이경실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날 필요가 있다. 이경실 측은 언론사와 대중에게 자제를 당부하는데, 이경실도 좀 자제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