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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쯔위 정체성을 왜 한국이 정해주나

 

이번에 중국쪽에서 황당한 트집을 잡았다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 해외판 소셜미디어 매체 협객도가 중국의 쯔위 사태를 집단적 광란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대만 분리독립파가 비윤리적으로 쯔위를 이용했다는 점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과 대만은 똑같이 쯔위를 대만 독립 열사로 만들어, 한 쪽에선 규탄하고 한 쪽에선 떠받들었다.

 

문제는 우리다. 중국과 대만의 쯔위 사태는 대단히 비이성적이었는데, 한국의 쯔위 사태는 과연 이성적이었는가? 한국의 쯔위 사태는 박진영 조리돌림이었다. 박진영이 대처를 잘못해서 일을 키웠고, 돈 벌 욕심에 눈이 어두워 소녀에게 자기 정체성에 어긋나는 사과를 하도록 강요했다며 모두가 일제히 박진영을 규탄했다. 이건 정상이었을까?

 

기본적으로 중국과 대만의 집단적 광란에 당한 피해자에게 니가 대처를 좀 더 잘 했어야 돼라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관점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쯔위에게 하나의 중국을 말하는 사과를 시킨 순간부터 박진영은 가해자로 전환됐기 때문에, ‘피해자 드립은 통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박진영은 정말 가해자인가?

 

일단 이상적인 대처부터 생각해보자. 이번 사태에 가장 이상적인 대처는 아무 대처도 안 하는 것이었다. 중국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광란에 빠진 것이기 때문에, 박진영이 그에 대해 뭐라고 할 이유가 없다. 굳이 뭐라고 해야 했다면 쯔위는 빼고 박진영만 나서서 차분하고 간단한 해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 수준으로 중국의 집단적 광란이 과연 멈췄을까? 그런 정도로 멈출 수준이었다면 광란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래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광기는 이성적 대화가 통하는 영역이 아니다. 3자는 논리적으로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다. 그러나 박진영은 제3자가 아닌 사업 당사자다. 판매자의 사활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큰손의 고객이 미쳐 날뛰며 깽판을 치는데, 세상에 어느 사업자가 거기서 시시비비를 논할 수 있을까? 무조건 사과하면서 달래는 건 일반적인 처신이다.

 

특히 사상검증 싸움이다. 과거 김대중이 황당한 사상검증 토론회에 나가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한 것은, 그런 방식이 옳아서가 아니었다.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힘이 강해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중국인들의 압력도 사업하는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다음, 쯔위 직접 사과로 인한 논란을 보자. 박진영 규탄엔 두 가지 프레임이 작동한다. 첫째, 사장과 소녀 직원 프레임. 둘째, 대만인 정체성 프레임.

 

사장과 소녀 직원 프레임은 박진영이 돈에 눈이 어두워 소녀를 내세워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기업의 경우에 말이 된다. 경영자가 책임져야 할 일을 매장 직원 책임으로 만들어 꼬리자르기식으로 빠져나가는 일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쯔위는 박진영의 부하직원이 아니다.

 

쯔위는 고향을 떠나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활동한다. 이것은 그에게 한류스타가 되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다는 뜻이다. 한류스타의 가장 큰 시장은 중국이다. 쯔위는 한류스타로서 중국시장에서 활동하고,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중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당사자다. 박진영 못지 않게 쯔위도 중국에서 돈벌이할 주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악덕사장과 소녀 직원 프레임은 말이 안 된다. 쯔위에게도 중국인들 앞에 직접 나설 이해관계가 있었다.

 

 

대만인 정체성 프레임은, 쯔위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한 것이 대만인 정체성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당연히 강요에 의해 나온 말이라는 이야기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과 대만이 과거 합의한 원칙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중국 지지가 대만인 정체성에서 벗어났다는 건 우리 네티즌의 억지다. 중국인이라는 표현도 대만에서 통할 수 있는 말이다.

 

다만 최근 분리독립파의 입지가 강해졌고, 경제불황으로 인해 청년층의 분리독립의지도 강해졌다. 당분간 대만은 일본 쪽으로 기울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또 모른다. 대만 내에서 하나의 중국파와 분리독립파가 일진일퇴하는 것인데, 지금 득세한 분리독립파가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다시 정권은 하나의 중국파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중국과 분리독립이 모두 대만의 정체성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네티즌은 분리독립만이 대만의 정체성이라며, 쯔위가 하나의 중국을 이야기한 것은 대만인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쯔위와 대만인의 정체성을 왜 한국인이 정해주나?

 

, 이번 사태에선 초능력자들이 대거 나타났다. 쯔위가 박진영에게 강요당해 사과했다고 사람들이 확신한 것이다. 쯔위의 속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까? 물론 정말로 쯔위가 강요당했을 수도 있다. 그건 나중에 근거가 드러나야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쯔위가 강요당했다고 진작에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도 중국이나 대만과 비슷한 일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거 없는 흥분, 근거 없는 비난, 근거 없는 단정지음과 그로 인한 집단적 분노다. 중국과 대만은 쯔위를 대만독립분자로 단정지었고, 한국인은 박진영의 강요와 쯔위의 희생을 단정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박진영과 쯔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화가 난 대중은 모르는 걸 싫어한다. 답답하기 때문이다. 빨리 단정짓고, 빨리 나쁜 놈을 찾아내서 욕하고 싶어한다. 박진영 측이 중국의 트집잡기에 황당한 사과를 하자, 과도한 저자세에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상했다. 국가주의적 분노다. 거기에 대형 기획사에 대한 반감, 대기업 갑질에 대한 반감, 어린 소녀가 윽박지르는 군중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는 불편함 등이 가세했다. 이 불편감을 해소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희생양으로 박진영이 당첨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중국 본토인, 대만인, 한국인이 모두 저마다의 욕망이나 국가적 자존심 등을 쯔위 사태에 투영해 분노를 터뜨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로 인해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사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다. 장사하는 박진영과 쯔위가 손님이 미쳐 날뛰며 개진상'을 피자 옛다 먹어라하고 사과 하나 던져준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다 손님이 진정되면 장사 계속하면 되는 일인데, 주위에서 핏대들을 세우며 일을 더 키운 측면도 있다. JYP 대처가 모두 잘한 건 아니었고, 특히 쯔위가 정치적 입장까지 밝힌 건 매우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박진영 조리돌림이 정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여튼 이번 일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동아시아 각국의 국민감정이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점이다. 모두가 정상, 이성적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바로 이들이 한류가 영업할 시장이다. 이런 데에서 장사하려거든 아예 국적성을 지우는 게 상책이다. 그런 점에서 국기 같은 것은 절대적으로 멀리할 대상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