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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아이유, 표현의 자유 역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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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산업과 표현의 자유의 충돌은 오래된 이슈다. 대중문화산업이 가장 번성한 미국에서부터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1960~70년대에 미국의 대중문화는 일종의 해방국면을 맞았다.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욕구가 일제히 분출되는 히피 전성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보수세력은 질색했고, 1980년대 레이건 시대에 보수의 반격이 거세게 일어났다. 마돈나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에 퇴폐 딱지를 붙이고 당대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 즉 청소년 문제, 마약 문제, 폭력 문제, 성범죄 문제 등 각종 사회 일탈행위의 원인으로 대중문화를 지목한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2002년작 <볼링 포 콜럼바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감독은 미국 진보세력에겐 영웅으로, 보수세력에겐 정신 나간 선동꾼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이야기한다. 당시 보수세력은 대중문화의 폭력적 표현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강렬한 헤비메탈의 마릴린 맨슨이 원흉으로 지목됐는데, 마릴린 맨슨은 마릴린 몬로와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을 합성한 것으로 이름부터가 금기를 넘어선 표현이었다. 마릴린 맨슨 류의 하드록은 흔히 폭력과 성적 욕망, 악마주의적 표현을 내세운다. 한국에서 만약 정윤희와 유영철을 합성한 이름의 가수가 등장해 악마적 퍼포먼스를 한다면 엄청난 질타 속에 곧바로 매장될 것이다. 마릴린 맨슨이라는 팝스타의 존재로 미국에서 한국보다 표현의 자유가 훨씬 크게 보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표현의 자유가 보수세력에겐 악몽이었다. 그들은 돈을 축적할 자유와 총기를 소유할 자유는 헌법적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기존 규범을 위협하는 표현의 자유는 사회악이라고 여긴다.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미국의 퇴폐적인 대중문화를 똑같이 즐기는 여타 서구 선진국에선 왜 미국과 같은 총기, 강력 범죄가 나타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결국 사회문제의 원인은 대중문화표현이 아닌 총기소유, 그리고 미국사회 특유의 양극화로 인한 빈곤과 분노의 만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니 대중문화표현에 대한 공격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를 놓고 한 쪽에선 사회적 악영향을 우려하며 통제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고전적인 논쟁의 양상이다. 보통 종교계나 소비자 학부모 단체 등이 전자이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이나 인문사회 지식인들은 후자 쪽이다. .

 

 

흔히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결국 정치적 억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에 대한 표현을 억압하는 수도사를 중세적 암흑기를 상징하는 독재자의 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사상계를 휩쓴 후엔, 욕망을 표현하는 그 자체가 정치적 억압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져 표현의 자유가 더욱 절대적 가치로 부각됐다. 한국에서 90년대 이후에 성적 표현이 지식인들의 지원 하에 만개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배질서가 억압하는 욕망을 해방시키는 것이 진정한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윤리를 폐하고 음란을 허하라가 지상과제가 됐으며 동성애 표현이 찬미되기도 했다.

 

-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미국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자리잡았다. 미국은 국가 역사의 기원부터 시민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공화국 체제였는데에 반해, 우리는 사상통제 엄숙 도덕주의의 조선을 거쳐, 일왕을 최고 존엄으로 섬기는 일제강점기와 대통령을 최고 존엄으로 섬기는 독재 시기까지 겪은 후에야 여기까지 왔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서구 시민 대부분이 누리는 사상의 자유가 제한된 처지이기도 하다. 방송출연자들이 국민 앞에서 대통령을 가리킬 때 존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아직도 완전히 시민적 자유가 정착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독재 시기 표현의 자유 논란은 정말 황당한 사례들이 많다. 신성일의 <맨발의

청춘> 마지막 장면은 너무 음울하다며 삭제당할 뻔했는데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한국 영화 불멸의 명작인 61년작 <오발탄>은 우울한 한국사회 묘사와 극중 노모의 가자 가자라는 대사가 문제가 됐다 북한으로 가자는 거냐?’라는 것이다. 이후 한국영화에선 현실과 아무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한 문예영화가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높으신 분들이 폭력물의 해악성을 염려해 액션영화도 우리의 시공간과 상관없는 만주 배경으로 찍었다. <놈놈놈>의 원조가 되는 만주웨스턴 장르의 탄생이다.

 

가요계는 검열 트라우마가 특히 깊다. 사회성이나 선정성의 문제가 없는 노래들까지도 마구잡이로 금지됐었기 때문이다. <고래사냥>, <왜 불러>, <아름다운 강산>, <미인>, 이런 노래들까지 금지당했다. <행복의 나라>지금은 불행하냐?’며 금지됐다고 한다. 그 시절에 국민의 치마길이와 머리길이를 경찰이 재는 모습은 두고두고 남는 웃음거리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문화계와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시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이유의 <제제>에 대한 공격에도 그러한 반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 이슈가 최근엔 전개 양상이 달라졌다. 상업주의가 극성하면서 상업적 목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일삼는 것,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문제로 떠올랐다. 걸그룹의 성적 상품화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일베에선 혐오표현이 줄을 잇는다. 이런 표현들까지 공화국의 이름으로 보호해야 할까?

 

여기에 최근 범죄에 대한 공포가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범죄적 표현, 특히 미성년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이 극에 달했다. , 따지고 보면 대중문화의 잘못된 표현이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회현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이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도 규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민간영역에서 커져간다. 얼마 전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하게 한 맥심 화보도 철퇴를 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거처럼 권력의 억압에 표현의 자유가 맞서는 구도도 여전히 작동한다. 개그맨들이 풍자개그를 자유롭게 못하는 것이나, 얼마 전 있었던 웹툰 음란물 딱지 논란이 그것을 말해준다. 작가회의가 2013년에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아이유는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이렇게 복잡한 표현의 자유 논란의 한 복판에 서게 됐다. 이번 아이유 논란은 창작자의 자유와 범죄의 공포, 선정성, 상업주의, 윤리 등이 충돌하는 표현의 자유 논란 2.0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집단공격과 조롱이 아닌 좀 더 차분한 논의가 있어야 우리사회의 문화적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