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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시영의 인기와 걸크러시

 

 

진짜 사나이출연을 통해 이시영이 갓시영이라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말 저녁만 되면 이시영의 활약상을 전하는 기사가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네티즌의 찬사 댓글이 줄을 잇는다. 처음엔 박찬호, 서인영 등이 더 관심을 받았었지만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이시영이 단연 원톱으로 떠올랐다.

 

오래달리기나 윗몸 일으키기 등에서 남성들을 뛰어넘는 체력을 선보였고, 부사관의 책무 등을 외울 땐 독보적인 암기력을 과시했다. 고공다이빙을 하는 이함 훈련 때는 앞장서서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몸 사리지 않는 먹방도 선보였다. 최근엔 남자도 버거워하는 25kg의 모의탄을 거뜬히 들어 장착하는 시범으로 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진짜 사나이의 원톱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요즘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이 항상 몸을 사리고 힘든 일은 남에게 기대는 경향이 있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자기 외모 가꾸기에만 신경 쓴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런 불만이 산발적으로 제기되다 인터넷에서 여성혐오라는 큰 흐름을 형성했다.

 

 

그런데 이시영은 그런 편견과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조금도 뒤로 빼지 않고 자기몫의 일을 해냈고, 예쁜 외모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러자 남성 네티즌들이 이시영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같은 여성들의 반응이 더 뜨겁다. 이시영이 여성이 봐도 멋있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잘 해내는 모습이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권투를 해왔다는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여성으로 비쳐져 같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어낸다.

 

멋진 여성에게 같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것은 최근의 대표적인 트렌드다. 이렇게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현상을 걸크러시라고 한다. 소녀(Girl)와 반하다는 뜻의 크러시 온(Crush On)을 합성한 말로, 최근 대중문화계의 중요한 흐름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같은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그 안에서 언니스라는 팀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런 걸크러시 흐름과 관련이 있다. 누나스가 아니라 언니스라고 한 것만 봐도,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기획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걸크러시 기획은 도처에 나타난다. ‘옥중화에선 옥녀가 조선판 걸크러시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미모, 지략, 리더십, 온갖 재주에 무예실력까지 출중해 왈패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여성이다. 드라마 닥터스에선 박신혜가 이종격투기 실력으로 조폭들을 때려눕혔다. 걸그룹들도 걸크러시 코드를 내세운다. 블랙핑크는 걸크러시 화보를 찍었고, 트와이스는 씩씩함을 내세우는 안무를 귀여운 안무 속에 추가했다. 박보영은 남성팬을 위한 애교를 요구 받자 "왜 항상 오빠에게 부려야 하냐. 언니들도 보고 있다"고 되받아쳐 호응을 이끌어냈다.

 

 

2015년 마마무의 음오아예뮤직비디오에서 문별이 남장으로 나와 잘생쁨’(잘생긴 예쁨)으로 인기를 끌면서 걸크러시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후 김숙이 가모장 캐릭터 숙크러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걸크러시 트렌드가 대중문화계의 가장 핫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젠 센 언니, 당당한 언니, 멋진 언니가 여성들의 우상이 됐다.

 

그전부터 여학생이 멋진 언니를 동경하는 현상은 있어왔지만 그것이 걸크러시라는 이름으로 대두된 것은 최근인데, 이렇게 걸크러시가 대두된 시기는 여성혐오가 대두된 시기와 겹친다. 여성에게 적대적인 분위기가 커질수록 멋지고, 당당하고, 강한 여성을 향한 동경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성들의 권리의식이 신장된 반면 사회적 억압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고, 잇따르는 범죄 속에 불안도 커져갔다. 이럴수록 강한 여성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성의 피해와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걸크러시 현상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