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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소녀시대 텐미닛사태는 저강도 패싸움

 

소녀시대 텐미닛사태는 저강도 패싸움


2008 드림콘서트에서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등의 팬클럽이 소녀시대 등장 장면에서 침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 시끄럽던 공연장에 10분여의 정적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소녀시대 텐미닛 굴욕 사건이다.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혹은 싫어하는 가수가 나왔을 때 조용할 순 있다. 나도 그렇게 한다. 내가 그랬을 때는 ‘사태’가 아니었는데 이번 침묵은 ‘사태’가 되었다. 무슨 차이일까?


첫째, 내가 조용한 건 나 하나 일이지만, 이번엔 그것이 ‘집단적,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사태가 되었다.


둘째, 나 하나 조용하건 말건 공연장 분위기는 알아서 흘러간다. 이번에 사태가 된 이유는 공연장 분위기가 실제로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조용할 때는 음악적으로 흥이 안 나서 자연스럽게 호응도가 떨어진 것이었다. 이번엔 음악과 상관없이 특정 가수와 가수 팬클럽에 대한 집단적 공격의 양상이었다. 그리하여 또 사태가 되었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각각의 음악팬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호응도를 달리해가며 공연을 보고, 그 각각의 취향의 다름이 거대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연장의 풍경이라면, 이번엔 거대집단들이 조직적으로 한 가수를 망신주기 위해 일제히 보조를 맞춤으로서 위력을 과시한 사태다.


예로부터 음악은 조화의 원리라 했는데 드림콘서트에서 나타난 건 집단, 조직, 권력, 폭력, 증오의 원리였다. 조화로운 나라를 기원하며 음율을 정비한 세종대왕이 와서 본다면 기절할 일이다.


물리적인 난투극만 벌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공연장이 사실상의 저강도 패싸움장이 됐다. 팬클럽과 팬클럽간의 힘겨루기가 팽팽한 조폭경연장처럼 된 것이다. 한국 가요계의 막장을 보여준 사건이다.


첫째, 집단성의 문제. 취향은 극히 사적인 것이다. 음악을 집단적으로 추종하는 건 파쇼다. 세종대왕은 유학적 국가통제를 위해 아악만을 권장하려는 유학자들의 뜻을 물리치고 백성들의 향악까지 포용했다. ‘가’군단 음악, ‘나’군단 음악, 이렇게 집단적으로 갈리고 대립하는 건, 그 안의 ‘사적인 취향‘이라는 다양성이 사라진 사태다. 이것은 음악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이다. 음악이 없는데 가수가 있고 팬클럽이 있다. 이 얼마나 공허한 풍경인가.


둘째, 실제로 조용해진 문제. 한 가요계 관계자는 아래와 같이 말하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드림콘서트'는 대한민국 가요계가 자랑하는 대형 행사다. '드림콘서트'는 아이돌 팬들만을 위한 콘서트가 아닌 10대들과 온 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요 잔치다. 팬들의 잘못된 인식이 국내 가요계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더 쌓이게 했다."


아이돌 팬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인데 몇몇 팬클럽이 침묵했다고 어떻게 실제로 공연장이 썰렁해질 수 있나? 가요계 관계자가 팬클럽 탓할 일이 아니다. 아이돌 팬클럽의 ‘집단적 괴성’을 현금으로 바꾸는데 골몰해온 건 한국가요산업 자신이다.


정말로 국민의 가요잔치였다면 글자 그대로 국민이 왔을 것이고 아이돌 팬클럽이 침묵하건 말건 공연장 분위기는 알아서 굴러갔을 것이다. 마치 나 하나 침묵했을 때처럼. 한국가요산업계가 10대 오빠부대를 상대로 상품을 바꿔가며 장사를 해온지 어언 십수년째다. 그 사이에 국민은 가요계를 떠나갔다. 남은 건 팬클럽의 괴성뿐이다. 팬클럽은 권력이 되었고 이번에 드림콘서트장에서 위력을 과시했다. 한국가요계의 자업자득이다.


셋째, 공격의 문제. 정상적인 음악팬이라면 공연장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러 가는 것이지 증오를 폭발시키러 가진 않는다. 여러 가수들의 무대가 이어지는 락페스티벌에 가보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진퇴하는 팬들을 볼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이면 나와서 놀고 아니면 들어간다. 무대 앞에서 침묵으로 시위하는 짓은 피곤해서라도 안 한다. 즐길 에너지도 모자랄 판에 증오할 여력이 없다. 이번엔 누군가 ‘침묵’이라고 쓴 푯말을 들어 보이며 행동을 지휘했고 사람들이 증오에 ‘집중’했다.


패거리를 지어 표적을 정하고 공격한 것이다. 이것이 공연장에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이른바 ‘한국의 음악팬’이라는 집단의 실체라니! 음악을 즐기러 공연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패싸움하는 결연한 각오로 공연장을 찾는 음악팬. 그들 위에 쌓아올려진 한국 대중음악산업. 이것이 그 잘난 ‘한류’의 ‘쌩얼’이다.


이것은 10대 팬클럽을 욕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작게는 한국음악계의 바닥이, 크게는 한국사회의 바닥이 드러난 사건이다. 예로부터 아이들은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카나리아는 공기 오염에 민감하기 때문에 광부들이 카나리아와 함께 갱도에 들어가 카나리아가 쓰러지면 대피했다는 것이다. 그처럼 아이들은 한 사회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한다.


10대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자기가 사는 공간에서 왕따로 그 고통을 해소하기도 하고, 이번처럼 팬클럽 가상패싸움으로 그 고통을 해소하기도 하고, 아니면 촛불집회에 가면을 쓰고 나와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의 약 5~6%가 자살을 실행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 인성이 온전하겠는가?


그런데 한국가요계는 이들을 상대로 자극적인 아이돌 상품들을 만들어내 그 호주머니를 갈취하는 데만 몰두해왔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콘서트 한번 망쳤다고 10대 팬클럽을 탓한다. 대통령은 10대들을 더 공황상태에 몰아넣으려고 입시경쟁 강화정책을 기획한다.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압도적지지로 뽑았다. 사회가 10대를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 당연히 10대에게 문화성이 사라져간다.


괴성을 지르던 수만의 집단이 일시에 침묵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우린 목격했다. 이 대목에서 나라걱정을 하는 나는 구세대인가? 구세대건 뭐건 걱정스럽다. 10대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이제 와서 팬클럽 탓하는 알량한 어른들이다. 10대를 그렇게 만든 건 바로 어른들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