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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한중일누리꾼이 원수가 된 이유

 

한중일누리꾼이 원수가 된 이유


한중일 3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인데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유럽사는 전쟁사다. 전쟁으로 날을 지샌 유럽도 이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한중일 3국의 상호 증오는 유별나다. 공식석상에선 우호관계이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속마음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것이 인터넷 댓글이다.


한중일 3국 누리꾼의 상호 적대행위는 이젠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풍경이다. 얼마 전 중국 지진에 대한 한국인의 악플을 지적했더니, ‘중국은 안 그런 줄 아느냐, 일본은 안 그런 줄 아느냐’란 항의가 있었다. 맞다.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런다. 한중일 3국은 원수지간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황하문명권이고 한자문화권이다. 동양에선 황하가 중심이었다. 그곳의 문물을 우리가 받아 일본에 중계해줬다. 중국 1위, 한국 2위, 일본 3위. 이 서열이 유지됐던 것이다. 한국은 중국에 굽실거리고 일본을 능멸했다. 일본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여기기 때문에 한국이 굽실거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근대에 들어와 이 서열이 뒤집혔다. 서양문물을 일본이 먼저 받아들였다. 일본이 그것을 한국에 중계해줬다. 중국은 이제야 그것을 받고 있다. 일본 1위, 한국 2위, 중국 3위가 됐다.


일본인은 자신들이 지금은 잘 나가기 때문에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을 무시한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이 같잖다. 과거 ‘꼬붕’이었던 나라가 새로운 형님 밑에 들어갔다고 잘난 척하는 꼴이라니. 우습기만 하다. 그래서 서양을 등에 업고 잘난 척하는 일본이 싫다.


한편 중국은 딱 걸렸다. 지난 세월 쌓였던 모멸감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중국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서 앞서가고 있다. 이젠 중국을 마음껏 능멸할 수 있다. 한풀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중국을 무시하고 일본을 싫어한다.


게다가 개발과정에서 한국인에게는 새로운 가치관이 주입됐다. 바로 황금제일주의다. 황금이 많은 나라엔 주눅 들고 황금이 없는 나라는 멸시하는 괴상한 국민성이 생겨버렸다. 이 가치관에 비추어볼 때 중국은 멸시할 대상에 속한다. 중국의 빈곤, 저개발이 우습다.


중국 입장에선 일본이고 한국이고 모두 재수 없다. 둘 다 과거엔 자기들 ‘꼬붕’이었는데 최근 들어 우쭐대고 있다. 언제 한번 ‘본때’를 보여주리라. 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 특히 한반도를 속방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한국인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이만저만 상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은 자신들이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객관적인 현실은 조그만 한국같은 나라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처지다. 이 관념과 현실간의 괴리가 중국인을 스트레스 상태에 빠뜨린다. 한국을 동경하기도 했다가 저주하기도 했다가 시샘하기도 했다가 하며 비정상적인 감정이 표출된다.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 일본이 싫은 것도 있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이 모두 팽창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더 무섭다. 브레진스키는 과거 세계 세력지도를 그리면서 한반도를 중국권역에 포함시킨 적이 있다. 이런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국의 힘이 회복되면 한반도의 중국편입을 시간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인에겐 이것에 대한 잠재적인 공포가 있다. 그래서 중국의 ‘포효’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한중일 3국은 이웃이면서 원수지간이 됐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악플이 인터넷에 나돌고, 사람들은 그것을 방조하고, 또 악감정을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번역해 자국에 뿌린다. 사람들은 상대국을 탓할 뿐이다. 타 지역 지역주의 탓하며 자기 동네 지역주의 정당화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 동아시아 3국이 이런 증오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 먼저 어른 되기 -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안 좋은 구도다. 우리한테 득 될게 하나도 없다. 동아시아 3국이 뭉치면 지구상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에게 분할당하고 있다. 꼭 전국시대 때 최강국이었던 진나라와 1대1 동맹관계를 맺고 서로 으르렁거렸던 제후국들 같다. 그 제후국들은 결국 진나라에게 각개격파당했다.


중국과 일본의 팽창의지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이것에 대해선 엄중한 주의를 기울이되 그것 때문에 우리까지 ‘만주도 우리 땅 대마도도 우리 땅‘식의 공세를 펼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에 팽창의지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적 멸시, 경제적 능멸은 정말 웃기는 짓이다. 이 짓을 지금 한중일 3국이 모두 하고 있는데 이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건간에 성숙한 쪽이 무조건 먼저 그만 둬야 한다. 문화는 생성되고 흐르는 것이 당연한 거다. 이게 어디서 나서 어딜 거쳐 흐른 것이 왜 잘난 척과 멸시의 이유가 되어야 하나? 소인배적 발상이다.


경제적 능멸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중국을 못 살고, 기술도 낮고, 저개발국 특유의 사건사고도 많이 터진다고 능멸하는 것은, 우리의 빈곤했던 과거 즉 우리의 부모님을 능멸하는 것과 같다. 또, 우리나라는 지금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에 비해 저개발 빈곤국이므로 우리 자신을 능멸하는 것과 같다. 제 발등 찍기다.


현재 좀 잘 산다는 이유로 중국을 무시하고, 과거에 문물을 전해줬다는 이유로 일본을 무시하는 ‘쫌생이’들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발달이나 했으면서 이래도 웃기는 일인데, 한국 수준의 나라가 그러고 있으니 한숨만 난다.


이런 식의 악감정이 표출될수록 우리나라만 더욱 작아질 뿐이다. 동아시아 3국이 모두 소인배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세계 최대 시장보유국이라는 우리 옆 나라들도 마음씀씀이는 참으로 좁다. 알량한 자존심에 죽고 산다. 옆나라들이 그런다고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라도 먼저 소인배 놀음을 그만 둬야 한다.


실리적으로 봐도 국가대결 구도는 동아시아 3국 중에 한국에게 가장 불리한 구도다. 대국이 돼야 한다. 힘으로 팽창하는 대국 말고 마음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대국 말이다. 일본, 중국 누리꾼이 악플로 우리를 자극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이 할 이유가 없다. 이런 ‘찌질한’ 싸움은 원래 어른이 먼저 그만 두는 법이다. 찌질이는 이제 그만, 어른이 되자. 

* 요즘엔 티벳문제로 중국능멸을 정당화한다. 그럼 쿠르드족 억압하는 터키는 왜 우리 형제국이라고 떠받들었을까?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찌질한 행태일 뿐이다. 미국인들도 이렇게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잣대를 편리하게 사용한다. 손쉬운 자기합리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