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아니라 풀대기가 된 여자’, ‘누군가의 손에 조심스레 꺾이고 싶은데 아무 신발에나 밟히는 늙은 여자가 된 여주인공과, 노안으로 글씨가 잘 안 보이고 연골이 닳아서 뼈끼리 부딪히는 퇴행성관절염에 시달리는 남주인공의 사랑이야기.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요즘은 멜로드라마의 인기가 저조하다. 청춘스타를 내세워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때 키스 먼저 할까요는 이례적으로 중년배우를 내세운 멜로드라마로 등장했다. 심지어 작품 초중반엔 로맨틱코미디처럼 보였다. 로맨틱코미디는 그야말로 젊은 스타들의 전유물 같은 장르다. 그런 장르에 중년배우를 내세운 시도가 낯설었지만, 시청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했다. 주인공인 김선아와 감우성에겐 또다시 전성기가 찾아왔다.

 

여주인공 안순진(김선아)40대 후반의 나이에도 간부가 되지 못한 항공기 승무원이다. 스튜어디스의 낭만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일을 할 뿐이다. 아이가 죽고 이혼한 뒤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건조한 생활을 이어왔다. 삶의 즐거움, 희망 같은 건 상상할 수 없고 사랑은 더욱 꿈도 꿀 수 없는 무채색의 생활이다.

남주인공 손무한(감우성)도 무채색의 삶을 사는 50세 광고회사 간부다. 이혼 후에 세상의 즐거움과 단절하고 오직 반려견하고만 함께 하는 쓸쓸한 생활이다. 반려견은 노화로 인해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 반려견의 모습이 쇠약해지는 손무한의 모습과 겹친다. ‘살 만큼 살아서 아플 만큼 아파서더 이상 가슴 뛸 일이 없을 것 같은 삶. 이렇게 무채색으로 살아가던 두 중년남녀가 만나 사랑에 이른다.

 

이미 세상을 경험할 만큼 경험한 어른들의 이야기다. 처음부터 모텔이 등장하고 비아그라 이야기가 나왔다.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자러 올래요?’라는 대사가 나왔다. 사랑보다 키스가 먼저였다. 글자 그대로 키스 먼저 할까요. 하지만 이들은 이내 설렘의 감정을 확인한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무채색의 존재가 돼버린 것 같았지만 이들에게도 사랑의 에너지가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예기치 않은 사랑에 빠지는데, 중년의 사랑은 청춘의 불같은 사랑과는 또 다르다. 이들의 동침은 욕망이 아니라 서로를 편안히 잠들게 해주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위안이었다.

 

이런 드라마를 시청자가 환영한 건 시대 변화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인생의 허리 시간대가 늘어난다. 과거처럼 20대에 한 번 반짝하고 늙어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정서적으로 젊은 시절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중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때까지 결혼을 안 했거나, 돌아온 싱글도 많다. 그래서 중년 세대에게도 사랑이 남 이야기가 아니다. 꽃 같은 청춘이 지났어도 더 이상 풀대기신세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바로 이런 시대를 반영했다.

작품적으로도 진부하지 않았다. 전반부엔 청춘 로맨틱코미디와는 다른 방식의 중년 로맨틱코미디를 선보이고, 후반부엔 시한부 설정이 나오지만 최루성 신파 멜로 전개를 피했다. 이렇게 시대변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신선한 이야기를 제시해서 성공한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성공 사례가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드라마들이 중년 멜로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