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와 장르물 열풍이 만났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이야기다. 88만원 세대 청년 백수인 염상수(이광수)와 한정오(정유미)는 경찰공무원에 도전한다. 경찰직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단순히 시험에만 통과하면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운 좋게 합격한 이들이 사건이 빈발하는 지구대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며 겪는 일들을 그린 드라마다.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강력사건 처리하면서 표창도 받고 고속승진도 하고 싶지만 이들이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은 주취자 뒤치다꺼리다. 순찰차에 퍼진 주취자의 토사물을 치우는 것도 이들의 일이다. 영화 속의 히어로 같은 경찰은 없다. 그저 날마다 사람들의 악다구니를 받아주고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뿐이다.

 

지구대엔 오랜 세월 이런 일상을 겪어온 선배들이 근무한다. 염상수의 사수는 범죄자를 많이 잡아 경찰 레전드라는 오양촌이다. 레전드라는 말은 앞뒤 안 가리고 오로지 범죄자 잡을 생각만 한다는 뜻에서 또라이의 동의어다. 조직 상층부가 놓친 범인을 굳이 잡아 상층부를 망신시켜 좌천당할 정도로 또라이. 이렇게 범죄척결만 생각하는 또라이기질은 바로 경찰의 사명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저 공무원이 될 생각이었던 염상수와 한정오는 지구대에서 근무하며 점차 사명감을 갖춘 또라이가 되어간다. 그게 바로 진짜 경찰의 모습이다.

 

그동안 영화, 드라마에서 경찰은 많이 나왔다. 주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잡아내는 영웅적인 모습이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는 지구대 순경이 조명된 적은 없었다. 지구대 순경은 그저 영웅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존재로만 그려졌는데, ‘라이브는 바로 그 순경의 일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답다. 노희경 작가는 낭만적인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류인 한국 드라마판에서, 보통 사람들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정신으로 이름 높았다. 상처를 이야기하고, 소통과 연민을 그리고, 가족과 삶을 표현했다. 노희경 작가에겐 사랑도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투성이인 사람들 사이의 연민이었다. 이것이 노희경 작가의 특별한 위상을 만들어냈다.

 

최근 장르물 열풍이다. ‘사랑타령에 매몰되던 한국드라마가 사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랑할 때 하더라도 범인은 잡는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서도 범인을 잡게 됐다. ‘라이브로 사건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노희경 작가와 장르물의 만남이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단순히 남들 하는 대로 장르물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다. 사건을 다루고 범인을 잡아도 노희경 작가의 본령은 잃지 않았다. 여기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연민이다. 경찰도 사람이고, 피해자도 사람이고, 범인도 사람이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희경의 따뜻한, 그리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지구대라서 그야말로 세상만사가 펼쳐진다. 노희경 작가가 취재한 실화에 바탕한 이야기들이다. 거기에 경찰들의 삶이 겹친다. 오양촌 어머니의 존엄사부터 직장인으로서 경찰들이 겪는 비애까지. 사람을 직접 구하는 직업의 자부심과 평균수명이 63세밖에 안 되는 직업의 고단함이 시청자에게 전해진다. 경찰을 이해하고 삶을 이해하게 되는 드라마다. 시즌제를 기대하게 한다. 이래서 노희경, 노희경 하는구나.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