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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승엽 선동 낚시에 넘어가지 않기



주말에 일본이 이승엽을 올림픽 보복 차원에서 2군으로 깎아내릴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영향 때문인지 오늘 이승엽의 어떤 인터뷰 기사는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하필 일본의 보복이 있을 것이냐에 관계된 답만 제목으로 뽑았다.


이승엽은 국내 기자의 질문에 일본팀이 프로라면 그럴 리가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 일본인들이 정상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만에 하나 일본이 이승엽에게 보복을 가한다 해도 그건 그때 가서 거론할 일이지 미리부터 설레발을 떨 필요가 없다. 이것은 이승엽을 이용해 민족주의적 반감을 고취하는 보도 태도다.


요미우리 구단의 대변지인 ‘스포츠호치’가 이승엽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지난 주말에 올렸는데, 이것이 올림픽 홈런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짙다는 것이 우리나라 언론의 분석이었다.


‘스포츠호치’는 이렇게 보도했다고 한다.


"호쾌한 홈런으로 일본을 격침시킨 이승엽이지만 복귀 후에는 외국인 선수들 간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 홈런과 타점 부문 리그 1위(33홈런 93타점, 22일 현재)를 달리고 있는 알렉스 라미레스(34)에 마무리 마크 크룬(35), 12승을 따낸 선발 요원 세스 그레이싱어(33)의 자리는 부동 ... 좌완 아드리안 번사이드(31)와 경쟁하게 될 것 ... 그러나 지난 20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번사이드는 24일부터 벌어질 8연전서 없어서는 안 될 선발 요원으로 떠올랐다. 이승엽의 2군행은 결정적."


이 보도내용의 어디에 ‘보복’의 감정이 있다는 말인가? 현재 이승엽의 성적은 최악이다. 홈런 1위, 10승 선발, 마무리 등 멀쩡히 잘 치고 잘 던지는 외국인 선수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요미우리가 이승엽이라는 부진한 외국인 선수를 지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우리 언론은 저 보도를 두고 ‘정황상 이승엽 내몰기’의 성격이 짙다고 보도했다. 황당한 분석이다. 안정환도 월드컵 이탈리아전 결승골 이후 이탈리아에서 보복을 당했다며 한국인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했다. 극일포(克日砲)라는 단어를 동원해 마치 이승엽이 일본에서 핍박당하는 항일투사인 것처럼 포장했다.


언론은 이런 구도를 선호한다. 조금이라도 이런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침소봉대된 기사들이 쏟아질 것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2군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 언론이 어떤 식으로 이승엽을 이용해 국민감정을 건드릴 지 불안하기만 하다.


어떤 언론은 기사를 쓰는 목적이 단지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에만 있는 것 같다. 민족주의적 분쟁, 특히 중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을 건드리는 것은 정말 좋은 호재가 된다. 거기에 이승엽이라는 메가톤급 호재까지 끼었으니 이 두 소재가 조합될 경우 형성될 폭발력은 언론에게 참을 수 없는 유혹일 것이다.


만약 구장에 ‘일본 무너뜨린 이승엽 물러가라’라는 개인 피켓이 하나 보이고, 홈페이지에 그런 게시글이 하나만 있어도 이 둘을 조합해 얼마든지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별것도 아닌 대립이 언론의 민족주의적 보도에 의해 양국간의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고, 언론은 장사하고, 국익은 훼손되고, 이승엽의 처지는 곤란해지는 최악의 국면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민족주의적 감정, 국가주의적 대립을 고취할 만한 일에는 절대로 언론이 미리 설레발을 떨면 안 된다. 예측 보도도 안 된다. 일이 확실히 터지기 전에 보도하는 것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밖에 안 된다. 사태가 명백해진 다음에 보도하되 그 논조도  차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일부 언론은 일본에서 이승엽이 아직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보복이 예측된다는 둥 멋대로 기사를 내보내고, 이승엽에게 관련된 질문을 던져 그 답을 제목으로 뽑는 등 민족주의 장사를 했다. 경솔하고 무책임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대립은 일단 발화하면 이성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런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 증오를 팔아 장사하는 언론이 되면 안 된다. 이미 한중일 3국간의 대립은 위험수위에 도달한 상태다. 그것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기사흥행의 소재로 삼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앞으로 또다시 이승엽을 소재로 한 선동 낚시 기사가 나올 수 있다. 이승엽이 아니라도 한국 언론엔 국가주의적 증오를 팔아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기사 천지다. 독자라도 냉정해야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