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태지가 네티즌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서태지에게 특권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사태의 내용은 이렇다. ‘가수 서태지가 지상파 방송3사 제작진에 지나친 특별 요구로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SBS <김정은의 초콜릿> 제작진과 협의하던 중 편집권과 특별 음향설비 등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서태지는 제작진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출연을 포기했다고 한다.
SBS <인기가요>에서의 특별대우도 난타를 당했다. <인기가요>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여러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는 자리다. 하지만 서태지는 자신만 특별히 사전 녹화된 화면을 방송하도록 했다. 녹화 때의 방청권은 방송사가 아닌 서태지 컴퍼니가 배부했다. 그리고 음향, 영상까지 서태지 측이 모두 작업한 후 내보내도록 했으며, 녹화 현장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쇼를 온전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 ‘서태지가 PD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을 요구한 것과 관련 제작진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른바 ‘방송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인용 보도된 발언들을 종합 재구성하면 이런 내용이다.
‘서태지가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사전 녹화 등 최근에는 가수로서 도를 넘고 있다. 하지만 제작진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들어줘가며 출연시키고 있다.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인데 PD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까지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행태다.’
그러므로 서태지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서태지는 큰 비난을 받았다. 한 마디로 ‘왜 혼자 잘난 척하냐’는 얘기였다. ‘특권’이나 ‘군림’의 낌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중심리가 폭발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서태지는 도를 넘는 특권을 요구하고 있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 서태지는 잘못이 없다 -
방송사는 유통업체일 뿐이다. 창작자, 가수와 팬 사이를 매개하는 매체다. 편집권 침해라고 하면 무슨 권력의 외압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말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나 뉴스에나 써야 한다. 서태지는 온전히 자신이 작업한 작품을 팬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방송사는 선택하면 그만이다.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거나.
서점에서도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는 별도로 진열한다. 특별한 디자인의 판매대가 꾸며지기도 한다. 그것은 특권인가? 당연히 아니다. 모든 유통업체가 그렇게 영업한다. 물론 특정 상품이나 회사가 독점력을 발휘해서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규제 대상이 된다. 서태지가 그런가?
그것도 아니다. 그런 영향력이라면 유사한 아이돌들로 방송을 도배하는 대형기획사에게나 있는 것이다. 가끔 가다 신곡 발표하고 활동하는 서태지는 그런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요즘 버라이어티에서도 라인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방송 중에 대놓고 유명 예능인 라인에 들고 싶다는 말이 오간다. 이런 것이 권력이다. 서태지와 친한 가수들이 쇼프로그램을 장악하기라도 했나? 서태지가 편집권을 접수해 미운 가수는 잘라버리고 친한 가수들만 부각시켰나?
아니다. 서태지는 프로그램을 장악해서 다른 가수들 등장 장면까지 통제하려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편집권 침해 운운은 말도 안 되는 비난이다. 그저 자기 작품을 최선의 상태로 제공하려 했을 뿐이다. 이것은 특권이 아니다. 팬에게도 창작자의 작품을 최선의 상태로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서태지가 막무가내로 방송사더러 모든 것을 다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역량을 투입해 직접 쇼를 제작했다. 그러므로 특권이라고 볼 여지는 전혀 없다. 창작자가 자기 자신의 예술을 통제할 권리를 몰수할 권리가 방송사엔 없다. 서태지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뿐이다.
- 창작자 권력을 키워라 -
서태지가 특이해 보이는 것은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을 서태지는 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만으로 욕을 먹는다면 억울한 일이다. 아니,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억울함이 아니다. 우리 대중문화의 자해극이다.
서태지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현재 대중음악의 위상이 어떤가? 바닥이다. 가수가 방송사의 광대로 전락했다. 가수는 자기 노래 홍보하기 위해 방송사에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다. 음악인의 소중한 음악을 방송사가 자신의 영업을 위해 가져다 쓰는 것이다. 그러나 매체의 유통권력은 창작자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창작자의 당연한 권리가 오히려 유통권력에 대한 ‘특권’으로 여겨질 정도로까지 상황이 역전돼버렸다. 이런 구조에서 대중예술의 가치가 살아날 순 없다.
유통권력의 발호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대형마트가 그렇다. 대형마트가 독점적인 유통력을 앞세워 제작사들을 압박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시장상황이다. 소비자들은 싸고 균질적인 상품이 대량으로 진열된 풍경을 보며 언듯 이익을 얻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유통업체의 권력이 커질수록 제조산업의 장기적 활력이 줄어들어 결국 소비자도 피해를 보게 된다. 월마트에 점령된 미국 제조산업의 황폐화된 풍경이 대표적이다.
유통업체는 제작자-창작자 소중한 줄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창작자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활동할 때 결국 제작물들의 질은 장기적으로 상승하고 유통업체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 가수들은 방송사가 제공하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의 가요프로그램에서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부품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서태지는 그것을 거부했다.
- 서태지를 욕하지 말고 서태지를 더 만들어라 -
비슷비슷한 상품들만 찍어내 장사에 몰두해온 한국 주류 대중음악계와 그들을 편하게 가져다 유통장사에 몰두한 방송사의 합작품이 현재의 대중음악 붕괴 상황이다. 콧대 높은 창작자는 사라져버렸다. 가수들이 예능에 나와 웃음을 팔기 위해 줄을 선 형국이다. 쇼프로에 잠깐이라도 비추면 감지덕지하고, 그렇게 얻은 유명세로 행사나 뛰면 다행이다. 그러므로 감히 방송사에 건방진 요구를 하는 가수들은 없었다.
하지만 서태지는 도발했다. 이것은 구조의 전복이다. 서태지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의 음악을 어떻게 평가하건,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 서태지는 창작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극대화하려 했다. 가수의 독자적인 지위가 무너지고, 개그맨과 가수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이때 서태지의 ‘오만함’은 절대적으로 옳다.
온갖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가수활동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대다. 이런 식이면 한국 대중음악에 미래는 없다. 서태지의 행동을 고깝게 볼 것이 아니라, 그렇게 콧대 높은 창작자들을 양산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대중음악에 희망이 있다. 서태지의 오만이 확대재생산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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