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며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한 입시학원 광고의 모델 때문이다.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닌 신해철이 입시학원 광고의 모델로 등장했다. 혹시 학원측에서 사진을 무단 사용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신해철은 일반적인 연예인이 아니라 ‘존경 받는 연예인’이었다. 마왕이라는 별명은 그런 위상을 상징했다. 그것은 그의 사회적 정당성과 용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사회적 폐해라는 점에서 대부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교육업체의 광고모델로 나선 것이다. (현재 금전적으로 한국인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두 가지는 개인채무와 자식 사교육비임)
어떤 네티즌은 이에 대해 자신이 여태까지 본 광고 중 가장 충격적이라면서 자기 눈이 의심스럽다고 하기도 했다. '독설보다 날카로운 신해철의 입시성공 전략!'이라는 카피는, 그의 정당성과 용기의 상징이었던 ‘독설’을 입시학원용으로 추락시킴으로서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신해철 입시학원 광고가 특히 충격을 주는 것은 그가 평소에 입시위주교육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랬다가 국민들에게 입시교육을 권하는 입시학원광고모델이라니. 여기서 오는 충격은 상당하다.
- 돈이 웬수다 -
부동산과 사교육 시장은 한국에서 현금이 솟아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대형 일간지가 부동산 광고로 연명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 사교육업체와 연계해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한겨레신문마저도 논술이니 영어니 하는 과목들 가지고 사교육사업을 전개해서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난 평소에 입시교육을 전면적으로 반대해왔던 사람이지만 한겨레신문의 사교육사업을 비난하진 못한다. ‘정의’ 이전에 ‘생존’이 문제란 걸 알기 때문이다.
신문시장의 극심한 불황 앞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처지에선 일단 살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노골적인 사교육 사업을 하며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기사를 동시에 쓰는 행태만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려니 넘어가고 있다. 돈이 ‘웬수’다.
- 신해철을 무작정 욕하진 못하겠다 -
신해철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이 나타나고 있다. 무작정 욕하는 것에서부터, 이럴 거면 앞으로 사회비판적인 발언을 하지 말라는 비난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신해철을 마냥 비난만 하긴 힘들다. 아직 그 속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과거에 ‘연예활동 20년에 남은 것은 빚 20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디지털 음원에 적합한 얄팍한 노래로 치고 빠지며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상적인’ 앨범작업을 하려고 노력해왔던 음악인이다.
문제는 한국 음반시장이 그런 음악인을 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는 거다. 그런 속에서 돈이 꼭 필요해서 한 선택이었다면 그걸 욕만 하긴 힘들다. 또 사회비판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은 ‘오바’다. 티끌이 좀 묻었다고 바로 진창 속에 빠지란 소린데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신해철이 이번 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아쉬운 일이다.
- 광고모델들만 욕하면 되나? -
대부업체 광고모델들이 융단폭격을 받았다. 얼마 전엔 교복광고 모델들이 하차했다. 이번엔 사교육광고 신해철이다. 그 업종의 광고 모델로 나섰을 때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해당 업종이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연예인 모델만 욕하면 능사인가?
국민을 상대로 돈벌이를 해서는 안 되는 영역, 지나친 돈벌이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부문의 광고를 근본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아파트, 대부업체, 사교육, 교복, 민간 의료보험 등의 광고는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없으면서 광고비만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 이런 영역들은 상당부분 공공부문에서 해결돼야 하는 것들이다.
좋은 이미지의 연예인이 얼굴로 나섰을 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문제가 큰 업종이라면, 확실히 광고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광고는 자유롭게 해놓고 가끔 가다 연예인이 한 명씩 걸릴 때마다 그 연예인만 사회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부디 신해철을 비난하는 일부 네티즌의 에너지가, 입시교육 전반에 대한 분노로, 그리고 과도한 돈벌이가 문제가 되는 부문들에 대한 광고 규제 요구로 발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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