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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재미없으면 다 잘라버리겠다?

 

 올해 들어 공중파TV 유일의 책 토론 프로그램인 KBS <TV 책을 말하다>가 폐지됐다. 한국사회는 이제 방송사에서 특별히 ‘책’을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책과 친밀한 사회가 됐는가?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책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서울시 자료에 의하면 서울시민 중 36%는 지난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만화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교양서적으로 범위를 좁히면 1년 내내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45.5%로 늘어난다. 여가시간에 독서를 하는 서울시민은 6%에 불과했다. 그나마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20대 중 50% 가까이는 남녀별로 각각 업무 관련 실용서나 잡지를 읽었다.


 요미우리신문의 2008년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의 54%가 한 달에 1권 이상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이유로 1위를 차지한 것이 ‘지식과 교양 함양을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책을 많이 읽는 직장인들의 경우 가장 많이 찾는 책은 교양서적이 아니라 경영·자기계발서나 재테크·금융서적이다. 이런 것은 이른바 ‘마음의 양식’하고는 거리가 멀다.


 과거엔 인문사회교양이 대형서점의 좋은 판매대에 진열됐었다. 최근엔 그 자리가 하나둘씩 자기계발서나 재테크서적같은 실용서로 바뀌고 있다. 한국인은 책을 안 읽는 민족이 되어간다. 한국은 지금 창조적인 지식사회로 진화해야 할 시점에 있다. 인간의 지식이 농축된 것은 책이다. 책을 멀리 한다는 것은 한국이 지식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이건 위기다.


 이런 위기일수록 공중파 방송사에서 국민들에게 책을 알려야 한다. 마치 중소기업 금융이 절실할 때 국책은행이 앞장서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처럼, 공공적 책임이 큰 공중파 방송사는 지식이 절실할 때 국민에게 지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공중파 방송사는 거꾸로 그나마 하나밖에 없는 책 관련 프로그램을 없애버렸다.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시청률이 낮을수록, 즉 국민의 관심이 저조할수록 교양프로그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방송사의 책무다. 만약 국민의 관심이 열화와 같다면, 그래서 이 땅에 지식교양이 젖과 꿀처럼 넘쳐흐른다면 그때는 이런 프로그램을 폐지해도 된다. 하지만 아마도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은 폐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정작 필요할 때는 없애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때는 보급하는 이상한 구조다. 교양프로그램의 존폐를 시청률로 정하면 반드시 이런 결과를 낳게 된다. 시청률은 절대로 프로그램 존폐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시청률 지상주의다.


- 공익 프로그램 멸종의 시대 -


 EBS도 올 봄 개편 때 라디오 교양 프로그램을 다수 없애는 대신 영어나 처세 관련 프로그램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방송 간판 교양프로그램 중 하나였다는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도 이런 흐름 속에서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SBS에서도 지난 해 <금요컬쳐클럽>이 폐지됐다. 대형서점에서 교양서적 판매대가 실용서 판매대로 바뀐 전철을 답습하는 모양새다.


 교양프로그램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산업의 장인들을 보육하는 단막극들도 사라졌다. 음악인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단련돼 오버그라운드에 나선다. 영화인은 단편영화를 통해 수련해 장편 극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처럼 드라마 관계자들은 단막극에서 훈련된 힘으로 연속극을 만들게 된다. 단막극이 사라졌다는 것은 방송사가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 데 자원투자하기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방송사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포기했을 때 우리 공동체에서 과연 누가 그 책무를 떠안을 수 있을까? 언제 망할지 모르는 영세한 프로덕션들이?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의 싹을 키워나갈 만한 자원을 보유한 영상산업주체는 대한민국에서 공중파방송사밖에 없다. 방송사가 그 책무를 저버리면 한국 드라마산업의 미래도 사라지는 것이다.


 사료에 충실한 정통사극도 사라져간다. 요즘 제작되는 사극은 재미에 치중한 퓨전사극들이다. 과거엔 예컨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최소한 조선왕조실록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 거라고 신뢰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허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뒤범벅 퓨전‘이다. 물론 퓨전 사극도 나름대로 의의는 있다. 문제는 역사책을 보완하며 볼 수 있는 교양사극이 멸종해간다는 데 있다.


- ‘막장’의 독배 -


 대신에 시청률을 보증한다는 두 부문, 즉 막말 예능과 막장 드라마가 만개하고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청소년 성장 드라마도 사라졌는데, 2009년 들어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꽃보다 남자>에선 교사가 아예 등장하지 않고 학생들이 납치극을 벌인다. 10대와 처녀용 ‘하이틴·트렌디 막장’이다.


 기혼자들은 <아내의 유혹>이 유혹한다. 버림받은 아내가 독하게 마음먹고 악에게 악으로 맞선다는 내용이다. 납치·살인·절도·사기 등 보통 사람이 평생 살면서 한 번 겪기도 힘든 일들이 일상으로 등장한다. 여타 드라마들도 이런 식의 ‘독한’ 설정을 뒤쫓고 있다. 독한 설정은 높은 시청률로 이어지니까.


 교양프로그램과 자극 강도가 약한 예능프로그램들이 사라질 때 리얼과 독설 예능은 살아남았다. 바른 말 고운 말을 하는 김제동은 버림받았다. 케이블 TV에선 여자를 벌거벗겨 식탁 위에 누인 이른바 ‘네이키드 스시’ 사건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었다. 그러나 자극은 경향적으로 강해진다.


 작품성이 아니라 오직 시청률만을 기준으로 한 지난 연말 방송사 시상식들의 행태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공익성 프로그램들의 멸종과 함께 ‘막장 시청률지상주의’는 여전히 질주하고 있다.


- 수익성 지상주의가 만악의 근원 -


 최근 들어 민영화의 압력이 강해졌다. 민영화는 수익성을 가장 중시하며, 자신이 장사해 번 돈으로 독자생존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런 구조로 이행하라는 압력 속에서 방송사는 점점 더 수익성에 집착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막장 시청률지상주의’의 근원이다.


 꼭 민영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공공기관에게 이른바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수익성을 요구하는 것이 2000년대의 흐름이다. 그것이 불황과 만나면서 결국 공익성 멸종의 시대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수익성은 방송사의 당장의 이익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우리 공동체의 장기적인 이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불황일수록, 그래서 국민들에게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 국민정서가 각박해질수록 공중파방송사는 책무감을 가지고 국민교양프로그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방송사들은 국민의 각박한 정서를 자극하기만 하고 있다. 대신에 시청률이라는 단 꿀을 빼먹으면서.


 이건 독배다. 국민에게 독배일 뿐만 아니라 방송사에게도 결국 독배가 될 것이다. 자극의 강도만으로 승부하는 제작관행은 결국 작품경쟁력을 잃게 만들어 장기적 경쟁력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또 자기 수익성에만 연연하는 방송사들을 국민은 지켜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구조조정 압박을 이겨낼 수도 없게 된다. 국민에게도, 방송사에게도 독배인 ‘막장 시청률지상주의’의 질주. 위태위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