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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나는 전설이다 실망스러운 좀비영화

 

나는 전설이다 실망스러운 좀비영화


이 영화는 오락영화다. 이 영화가 오락영화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간단하다. 이 영화에는 돈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므로 오락영화다. 돈을 많이 쓰고도 오락영화가 아니라면 제작자가 제 정신이 아니거나 돈이 썩어나는 경우일 텐데 이 영화는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주위에 영화 볼 시간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영화 볼 생각이 나게 할 만큼 홍보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건 돈을 크게 벌 생각으로 돈을 크게 쓰는 전형적인 상업영화라는 걸 의미한다.


나도 그렇고 남들도 다 그렇게 느끼도록 홍보를 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자신이 남들에게 믿게 한 그것을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 이런 것이 ‘신뢰’다. 헐리웃 블록버스터는 이런 종류의 신뢰를 수십 년간 유지해왔다. 가장 최근엔 트랜스포머를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나는 전설이다>는 불행히도 그 신뢰를 지키지 못했다.


재미의 수준이 평작의 그것을 넘지 못한다. 그냥 돈 많이 쓴 좀비 영화다. 좀비 영화의 재미로는 <레지던트 이블>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 영화의 원래 설정인 흡혈귀 영화로는 <언더월드>를 따라가지 못한다.


최근 좀비 영화엔 좀비 움직임 인플레 현상이 있다. 좀비의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는 것인데 이 영화엔 아마도 가장 빠른 좀비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 자체의 속도감이 떨어진다.


전설이라는 엄청난 타이틀도 차라리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에게 더 어울린다. 이 영화는 윌 스미스가 전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관객이 공감하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 전략을 쓰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앞뒤 분간 없이 그냥 달리는 영화, 부수고 또 부수는 영화, 악의 무리들이 덤비고 또 덤비는 영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이것이 <레지던트 이블>이나 <언더월드> 등의 영화와 다른 점이다.


대신에 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들이 사라진 텅빈 도시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고독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독을 보기 위해 관객이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종류의 정서를, 그것이 고독이든 슬픔이든 뭐든지간에, 충분히 잘 표현해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락의 미덕이 있다 할 것이다. 이 영화에는 그런 공감이 없다.


예컨대 주인공이 자신이 기르던, 아니 자신과 함께 살던 개를 죽여야 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래, 그건 알겠다. 영화를 보면 영화가 다 가르쳐 준다.


‘지금 펼쳐지는 장면은 주인공이 깊은 슬픔을 느끼는 고도의 심리묘사장면입니다. 윌 스미스의 연기에 주목해주세요.’


스크린 너머로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건 알겠는데 공감이 안 간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심리묘사를 할 거면 차라리 주인공의 개가 철갑무적 좀비로 돌변해 주인공과 ‘대난장판’ 혈투를 치르는 설정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주인공의 슬픔은 맨 마지막에 개를 죽이는 대목에서 표정 클로즈업 정도로 표현해도 전달이 된다. 그 정도로도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의 정서를 이 영화는 지나치게 무게를 잡으면서 표현하는 바람에 재미를 놓쳤다.


물론 영화에서 재미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 잊게 해주는 재미 외에 달리 기대할 미덕이 없다. 애초에 별다른 미덕을 추구한 흔적도 없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자신이 세상의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턱없는 오만을 비웃는 전복적 상상을 담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런 원작의 설정을 없애버리고 인간 대 박멸해야 할 좀비 군단이라는 단순 도식을 채택했다. 그런데 재미조차 없다? 실패작이다.


원작에서 전설은 인간의 멸망을 의미한다. 그걸 이 영화는 인간의 구원으로 바꿔치기했다.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인간세상을 구원하는 남자 주인공. 딱 헐리웃 오락영화다. 그렇다면 화끈하게 물리쳐주기라도 해야 돈값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최근에 헐리웃 오락영화에선 주인공들이 고뇌하는 버릇이 생겼다. <스파이더맨>, <해리포터>, <배트맨> 등. 그래도 그것이 용서가 되는 것은 후반부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순무식 롤러코스터’ 모드의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선 후반부 액션이 함량미달이었고, 마지막 결말도 납득되지 않는다. 전설이라는 제목에 결말을 갖다 맞춘 느낌이다. 감동도 없고 깔끔하지도 않다. 허탈하기까지 한데 ‘돈값’을 못하는 결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볍게 보기에 크게 부족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나는 전설이다>라는 야심만만한 제목에 값할 만큼 전설적인 재미나 존재감이 있는 작품은 아니다. 그저 메이져에서 많은 돈을 들여 ‘B급’이 아닌 ‘A급’으로 만든 좀비영화 정도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