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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일본지진에 잔치판? 네티즌 미쳤다

 

일본 수도 도쿄에서 9일 저녁 규모 6.9의 지진이 감지됐다는 속보가 나왔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만 전하는 아주 간단한 기사였다.


원래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기사를 클릭했다가, 또다시 깜짝 놀랐다. 공개된 지 한 시간 정도밖에 안 된 기사였는데 댓글이 220개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댓글을 달게 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 지진이 났다는 간단한 속보에 순식간에 달린 댓글들.


뻔했다. 증오댓글일 터였다. 네티즌의 일본·중국 증오는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일이지만, 간단한 기사에도 이렇게 폭발할 만큼 증오심들이 넘쳐나다니.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친 거 아닌가?


- 인면수심 -


220개에 달하는 댓글을 펼치자마자 제일 위에 있는 댓글이 이것이었다.


‘간만에 웃는다 ㅋㅋㅋㅋㅋㅋ

날도 덥고 짜증나는데 오랜만에 웃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남이 불행을 당한 기사에 대놓고 할 말인가? 이 속보만 보고서는 피해여부를 알 수 없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지진이 났다는 소리만 듣고 이렇게 좋아하는 글을 남들이 다보는 게시판에 올려놓는 건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선 이럴 수는 없다. 그다음 이어진 댓글들도 광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반가운 소식 즐거운 소식’ 

 

 ‘가라앉을 만도 한데 오래 버티는군.’


‘아 슈발 기분이 좋아! 원숭이나라 지진일어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진도10이상으로 나올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부 다 뒈지셈’ 


 ‘6.9가지구 간에 기별이나 가겠어 이거? 한 10 때려 맞어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훈훈한... 기사 볼 때마다 짜증났었는데 오랫만에 훈훈한 소식입니다.’ 


 ‘지루하다..언제나 침몰할래? 이제 간은 그만보고 침몰해버려라 .... 지겨운 원숭이나라’


인터넷 댓글은 개인의 일기장이 아니다. 그곳에 글을 쓰면 남들도 본다. 어딘가에서 안 좋은 일이 터졌을 때 속으로 어떤 마음을 품건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축하한다는 식으로 대자보를 공공연하게 거는 건 사회의 지탄을 받을 일이다.

  

이 세상엔 인륜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에 지진이 났다는데 즉각 달려들어 공공연하게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우리나라. 무섭다.


- 무뇌 사이코패스가 되가는가 -


한국엔 한국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주한 외국인도 많다. 특히 한국 대중문화에 민감한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다. 인터넷에 공개된 댓글들을 당연히 그들도 볼 것이다.


‘일본에 지진이 났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이 잔치를 벌리더라‘라는 소문이 일본에 퍼져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일본의 전통적 우익들은 원래부터 한국을 적대시했었지만, 일본의 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 그런 젊은 사람들을 친한파로 만들어야 장차 양국간의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


사이코패스같은 인터넷 댓글들은 바로 그런 젊은 사람들을 혐한파로 만드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과 한국의 네티즌이 상호 댓글전쟁으로 증오심을 키운다면 한일관계 정상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나중에 별 피해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만약 이 지진이 큰 참사였다면? 그 비통한 분위기에 한국의 악플이 알려진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국과 일본이 증오로 멀어지면 제일 불리한 건 우리다. 한국은 지금 미국에 치이고, 중국에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유럽처럼 동아시아가 뭉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중국에 흡수되지 않으려면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연대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세계적으로 독자적인 문명권으로 인정받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상으로도 동아시아 맹주의 위상을 이미 확고히 한 상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동아시아 현지 파트너로 삼아왔으며 한반도 지배까지 용인했었다. 그러므로 일본에겐 한국이 파트너로서 그렇게 절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독자적으론 힘이 없고, 주위에 포진한 건 상상을 초월하는 강대국들뿐이다. 그나마 일본이 만만하다. 일본과의 관계마저 틀어지면 독자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일본은 한류 등 한국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손님인 것이다. 손님의 집에 사고가 났다는 메시지가 왔는데 그걸 보고 가게 주인이 박수를 치면 어떡하나? 아무리 손님이 미워도 그런 가게 주인은 없다. 아주 절연할 각오를 하지 않은 다음에야.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윤리의 차원에서도, 국제 전략의 차원에서도, 이익의 차원에서도 일본 지진에 댓글잔치를 벌이는 건 미친 짓이다. 이런 사려도 없이 즉각 증오댓글을 배설해대는 건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다. 인정도 메말랐고 생각도 없다? 우리 네티즌은 ‘무뇌 사이코패스’가 되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