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상반기 예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리얼버라이어티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예능의 판도를 가르는 주말 시간대에 삼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정족의 형세로 버티고 서서 천하를 삼분했던 것이다.
바로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이 세 프로그램이다. 소설 삼국지에선 위, 촉, 오 세 나라 사이에 힘의 서열이 분명하다. 예능 삼국지에선 그렇지 않다. 각자의 개성을 분명히 한 채 호각지세로 버티는 형국이다.
원조는 당연히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은 올해도 매주 컨셉트를 바꿔가며 마르지 않는 창조성을 과시했다. <무한도전>은 한때 위기를 맞았었다. 프로그램 자체의 흥미도도 떨어지고, 성공에 따른 견제심리로 <무한도전>을 비판하는 기사가 양산됐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부활에 성공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공감을 얻어내는 소재를 발굴한 결과다.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무한도전>은 이제 ‘존경받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한도전>은 올 상반기를 마감하여 준비한 듀엣가요제 특집으로 또 한 번 대박을 쳤다. 예능계와 음악계를 동시에 뒤흔든 대박이었다.
<1박2일>도 2008년 후반에 위기를 맞았었다. 역시 흥미도는 떨어지는데 견제심리는 강해진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겨울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강한 체력의 남성들로 구성된 <1박2일>은 극한의 여행으로 시청자에게 육박해 들어왔다. 욕을 먹어도 끊임없이 물에 빠지며 결국 시청자를 승복시켰다.
또, 스타의 화려함을 배제한 인간미로 승부를 걸었다. 연예인 게스트가 아닌 평범한 보통사람들, 심지어는 제작진까지 참여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다시 살렸고, 부활한 <1박2일>도 역시 존경받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패밀리가 떴다>는 도전정신, 창조성이나 극한의 체험, 인간미 등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남녀가 함께 떠난 엠티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추구한다. 스타 게스트를 적절히 배치한 아기자기함은 일요일밤 시청자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네티즌의 견제가 점점 강해지는 위기를 맞았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이 모두 한 번씩 맞았던 위기가 닥친 것이다. 현재의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가 <패밀리가 떴다>에게 하반기 숙제로 남았다.
- 아저씨들의 대두 -
최근 <1박2일>이 포함된 <해피선데이>의 통합 시청률이 <패밀리가 떴다>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었다. <해피선데이>의 또 다른 코너인 <남자의 자격>이 선전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은 리얼버라이어티 삼국지 이후에 출발한 후발주자 중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것은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아저씨들이 진정한 남자다움을 찾아간다는 컨셉트다. 남자의, 남자를 위한, 남자에 의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무한도전>도, <1박2일>도 모두 남자들의 세계다. <패밀리가 떴다>도 여자는 극소수다. 남녀가 동수로 나오는 짝짓기 포맷은 전멸했다. 3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예능계를 점령하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같은 여성형 예능프로그램은 숨만 쉬고 있는 분위기다. <골드미스가 간다>와 <세바퀴>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데, 모두 일반적인 여성성과는 상관이 없는 ‘드센 여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굴욕적인 침체는 상반기에 많은 화제를 양산했다. 망해도 너무 망했다. 유명 MC들을 단체로 초빙해도, 소녀시대를 전면에 내세워도, 뭘 해도 되는 일이 없었다. 상반기 말경에 처음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주목받는 코너가 나타났으니, 바로 <오빠밴드>였다. 이것도 아저씨 예능이다. 토요일에 시작된 <천하무적 야구단>도 역시 아저씨들의 활극이다. 야생이 강조되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엔 남자가 더 유리했다.
- 평일 예능과 코미디 -
평일엔 <해피투게더>, <야심만만2>, <놀러와>같은 스튜디오 토크쇼들이 안정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나친 스타 사생활 캐기로 종종 물의를 빚었지만(특히 <샴페인>), 대중이 스타에게 관심을 가지는 한 이런 프로그램은 영원할 것이다.
토크쇼 분야에선 특히 <무릎팍도사>의 선전과 <박중훈쇼>의 몰락이 강렬히 대비됐다. <박중훈쇼>는 2008년 말에 시작해 올 상반기 본격적으로 전파를 탔으나, 시청자의 냉정한 외면을 당했다. 리얼독설의 시대를 살기 시작한 한국인은 이제 80년대식의 의례적인 토크쇼에 코웃음을 쳤다.
공개코미디의 몰락 속에 <개그콘서트>의 선전이 그나마 눈길을 끌었다. <개그콘서트>는 수많은 유행어들을 양산하며 예능계의 인재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상반기 최대 히트작이라 할 만했다. 반면에 <개그야>, <웃찾사>는 끝없이 추락했다.
종합하면 한국인은 요즘 가식을 벗어던진 리얼 야생에 통쾌함을 느끼며, 동시에 남자들이 보여주는 우정, 인간미, 따뜻함 등에서 감동과 위안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인기를 끄는 예능 프로그램엔 모두 출연자들 사이에 정이 흐르며, 가식 없이 감정을 폭발시킨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대망>은 바로 그 정의 느낌을 주지 못함으로서 올 상반기 가장 화려하게 망한 프로그램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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