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뉴스의 전문가 인터뷰를 패러디한 적이 있었다. 기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문의하면 전문가가 뻔한 얘기를 한다. 그러면 기자가 ‘하나마나한 말씀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 대꾸한다는 설정이었다.
그렇게 비웃음이나 사는 당연한 얘기들은 하기가 꺼려진다. 지겨우니까. 하지만 세상이 안 당연한 쪽으로 가고 있다면 당연한 얘기를 안 할 도리도 없다. 그래서 얼마 전 재범 사태에 대해서도 결국 당연한 지적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이것이다.
악플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은 교육과 사회구조에 있다.
한국인은 지금 미쳐가고 있다.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그래서 뭔가 신경을 거스르는 일이 터졌을 때 즉각 집단적인 공격성을 나타낸다. 한국인을 이렇게 만든 것이 결국 교육과 사회구조라는 얘기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나 정확한 이야기라서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논객들은 재범 사태에서 애국주의 문제를 지적했다. 과도한 애국주의가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네티즌의 집단적인 악플 사태들을 애국주의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재범 사태는 한국비하논란에서부터 촉발되었으니 애국주의, 국가주의 문제를 갖다 붙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재범 사태 이후에 터진 건 대중의 박진영 사냥이었다. 박진영은 우리 국내 연예인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욕하는 것도 애국주의일까?
국산차에 대한 악플도 만만치 않다. 제네시스가 나올 당시 악플의 열기는 대단했다. 모두들 일본차나 독일차를 찬양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애국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짜증이 나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이 나는 판에 뭔가 일이 터지니까 ‘옳다 잘 걸렸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구나’하면서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이 때로는 애국주의적 집단행동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재범 사태의 원인을 애국주의라고 해석한 건 잘못된 인식이었다. 네티즌의 집단행동에 논객들이 애국주의, 국가주의라고 딱지를 붙이면 네티즌들은 더 짜증을 내며 일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촛불집회 네티즌에게 우익 논객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을 때 네티즌들이 짜증을 냈던 이유와 같다.
애국주의같은 무슨 ‘주의’가 아니라 그냥 미친 상태라고 보는 것이 맞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과 사회구조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애국주의를 천년만년 개탄해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을 것이다.
- 교육 붕괴 아이들 인성 붕괴 -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했다. 중학생이 학원에 가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고등학생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단과 학원에 다녔었다. 입시경쟁 자체가 고등학교 진학 후에야 본격화됐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이젠 초등학생 때부터 별을 보며 학원에 다녀야 한다. 인간적인 여유라든가 인격적인 성숙 같은 단어들은 사치에 불과하게 됐다. 오로지 경쟁, 경쟁, 경쟁이다.
안 미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미쳐버렸다. 과거엔 없던 왕따 현상이 나타났고, 청소년 폭력이 극렬해지고 있으며, 최근엔 초등학생 폭력의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다. 고등학생의 5%가 자살을 실행에 옮겨본 적이 있으며, 25%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 웃기는 소리다. 아이돌이나 쥐어짜야 한다. 사랑할 때도 병적으로 열광하고, 싫어할 때도 병적으로 증오하고, 죽으나 사나 아이돌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박탈당한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는 인터넷이나 게임 정도밖에 없다. 연예인은 그들에게 유일한 놀이감이다.
- 사회 붕괴 한국인의 삶 붕괴 -
과거엔 대학에 간 후 사람과, 사회과학과, 술과, 연대감을 만났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고 난 후 현재 대학생들이 만나는 건 등록금 부채와 실업의 공포뿐이다. 학교를 졸업한 다음엔 부채를 갚으며 청년실업과 저임금, 구조조정의 불안과 싸워야 한다. 내가 죽을 지경인데 남의 상처가 무에 그리 대수랴. 악플이라도 쏘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30대는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부채 상환 등의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다. 40대는 자신의 노후가 비참해질 것을 뻔히 알면서 자식 사교육비를 대고, 구조조정 당하지 않으려 전전긍긍한다. 50대는 각박한 경쟁 속에서 이미 퇴물 신세로 전락하고, 노년이 되면 저축도 사회보장도 없기 때문에 인간 존엄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야말로 극악의 인생인 것이다. 이것이 악플을 포함해 온갖 병적인 대중행동의 총체적인 원인이다. 경쟁교육과 양극화사회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무슨 ‘주의’를 갖다 대 대중을 비판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대중은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댈 것이고 희생양도 양산될 것이다.
'대중사회문화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똥파리 김꽃비가 대종상을 살렸다 (12) | 2009.11.07 |
---|---|
낸시랭의 섹시사진이 예술일까? (16) | 2009.11.06 |
윤계상, 고마운 줄을 모른다 (163) | 2009.11.03 |
W가 방영한 아프리카의 기초소득 실험 (8) | 2009.10.20 |
대학가요제는 왜 몰락했을까 (8) | 2009.10.06 |
‘꿀벅지’, 양지로 잘못 나온 수컷들의 뒷담화 (36) | 2009.09.25 |
강인 폭행사건에서 안타까운 것 (9) | 2009.09.23 |
재범사태 2라운드 박진영탓이다? (50) | 2009.09.16 |
혼, 재범, 정수근, ‘다 죽여버리겠어!’ (23) | 2009.09.11 |
2PM 재범이 지은 죽을죄의 정체 (43) | 2009.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