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에서 ‘남자는 몰라’라는 코너를 준비해 <개그콘서트> ‘남보원’에 도전한다는 보도가 나와 기대했었다. ‘남보원’은 남성의 속마음을 대변해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는 프로그램이다. 왜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냐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한국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친 여성차별국가이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남녀차별 정도에서 OECD 수위를 달리는 남성들의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남성인권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웃찾사>가 ‘남자는 몰라’라는 코너를 만들어 ‘남보원’에 맞불을 놓는다고 했을 때 더욱 기대가 됐었다. 나의 개인적인 기대뿐만이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남보원’에 제대로 맞불을 놓는다면 화제몰이를 하면서 <웃찾사>를 살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었다.
많은 매체에서도 ‘남자는 몰라’와 ‘남보원’의 라이벌 구도를 기사화했다. 그런 만큼 흥미로운 구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남자는 몰라’는 ‘남보원’에 대적한다기보다는 마치 ‘남보원’ 부록 같은 느낌을 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 남자는 여자의 된장끼를 몰라? -
‘남보원’이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는 것을 내세운다면, ‘남자는 몰라’는 ‘대한민국 남성 모두가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그날까지’ 여성의 마음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들을 그려주고 있다.
여자가 데이트 중에 춥다고 말했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옷을 벗어주거나, 안아주려고 했다. 그러자 여자는 화를 내며 가버렸다. 왜? 남자는 몰랐기 때문이다. 여자가 춥다고 하는 것은, ‘나 코트 좀 사줘~’라는 뜻이라는 걸. 여자가 미니스커트에 가벼운 차림으로 다니는 것도 남자들에게 추워보이게 해 코트를 사주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사줄 땐 당연히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줘야 한다. 짝퉁이라는 게 들통 나면 여자 눈에서 눈물이 난다.
여자가 네일아트를 하고도 자기 손이 예쁘지 않다고 말할 때, 남자가 예쁘게 잘 됐다고 칭찬만 하고 있으면 여자 속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여자가 손이 안 예쁘다고 하는 건 사실 ‘내 손에 반지가 없어, 사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지가 있고 없고는 여자의 행동거지를 전혀 다르게 한다. 여자한테 반지는 소중하니까.
여자는 선물의 정성 따위는 무시한다. 호화롭지 않은 것이라면 커플링도 싫어한다. 차라리 커플링할 돈을 합쳐 보석이 박힌 제대로 된 ‘알’ 반지 하나를 해주길 원한다. 물론 백화점에서 산 것이어야 한다.
이런 것이 남자는 모르는 여자의 마음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프로그램 제목을 ‘남자는 몰라’가 아닌, ‘남자는 여자의 된장끼를 몰라’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 된장녀 때리기 경쟁? -
여자는 남자들이 ‘씹어 돌리는’ 대상이다. 못 생긴 여자들은 오크녀라고 씹힌다. 인터넷에서, TV 쇼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오크녀는 인격 자체를 무시당하기 일쑤다. 안 그런 여자는 부위별로 등급이 매겨진다. 글래머 가슴에 꿀벅지를 가진 청순녀가 돼야 합격점이다.
남성들이 씹어 돌리는 대상에 된장녀가 추가됐다. 민생파탄, 청년빈곤의 결과다. 된장녀는 물질적 욕망을 최선으로 여기는 21세기의 산물일 뿐, 21세기 빈곤의 원인제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된장녀를 공격하는 것으로 21세기 빈곤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피해를 더 많이 당하는 건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다. 당연하다. 약자니까. 하지만 분노에 눈이 먼 남성들에게 당장 보이는 건 눈앞에 있는 얄미운 여성들뿐이다. 그리하여 ‘된장녀 씹기‘는 대중 스포츠가 됐다.
‘남보원’은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인데, 뚜껑을 연 ‘남자는 몰라’도 만만치 않았다. 여성을 된장녀로 일반화하며 남성들이 통쾌하게 씹을 수 있도록 꺼리들을 던져 주는 것이다. ‘남보원’에 맞불을 놓겠다는 홍보가 무색해졌다. 그냥 된장녀 때리기 풍조에 가담해 한몫 잡겠다는 것 아닌가.
물론 같은 컨셉으로 가도 대결구도가 형성이 되긴 한다. 하지만 이왕이면 컨셉 자체에서부터 반대로 가, 대결구도를 더욱 선명히 하길 바랬었다. 그랬으면 좀 더 흥미진진한 대결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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