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효리다. 1주일 만에 무대를 변화시켰다. 일종의 설욕전이라고 할까? 지난 주 복귀무대는 기대이하의 모습으로 많은 비난을 들었었다. 이번 주 무대는 달랐다.
지난 주엔 뭔가 맥 빠진 느낌에 헐렁헐렁한 코디라는 인상을 줬었다. 물론 그건 ‘아임백’의 영향이 컸었지만 어쨌든 사람의 머리속에선 지난 주에 부른 세 곡이 뭉뚱그려져서 하나의 인상으로 남는 법이다. 그 인상은 한 마디로 이효리의 카리스마, 이효리의 파워가 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주엔 ‘치티치티 뱅뱅’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난 주와 같은 힙합 복장의 재앙이 없었다. 그리고 ‘치티치티 뱅뱅’ 무대에도 변화를 줬다.
지난 주 ‘치티치티 뱅뱅’ 무대는 랩퍼의 랩으로 시작했었다. 그다음엔 이효리가 무대 뒤에 서 있다가 걸어나왔다. 이것은 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임백’의 ‘헐렁헐렁’함 때문에 실망한 시청자들을 맥 빠지게 한 설정이었다. 그래서 지난 글에서 더욱 파워풀한 ‘치티치티 뱅뱅’ 무대를 주문했었던 것이다.
이번 주엔 남성 댄서들이 반주에 맞춰 팔을 흔드는 것을 오프닝으로 했다. 이것은 더욱 파워풀한 느낌을 줬다. 그다음엔 쉼 없이 군무로 이어졌다. 이것도 지난 주보다 역동적이었다.
의상도 지난 주의 뭔가 맥 빠지고 정신 사나운 것에서 좀 더 강렬한 것들로 바뀌었다. 댄서들의 의상도 그렇고 이효리의 의상도 그랬다. 지난 주엔 이효리가 입고 싶은 의상이었다면, 이번 주엔 이효리가 입고 싶은 것과 시청자가 보고 싶은 것을 절충한 느낌이었다. 이효리의 배를 드러낸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더 힘이 느껴졌고, 그래서 이번 앨범의 컨셉인 카리스마, 자신감에 더 어울렸다. 지난 주엔 가사는 카리스마인데 무대에는 카리스마가 없어서 민망하고 안쓰러웠었는데, 이번 주엔 그렇지 않았다. 이게 진짜 이효리다.
- 이효리를 보는 두 시선 -
지난 주 무대 후에 이효리가 인터넷에서 동네북처럼 웃음거리가 됐었다. 그때의 무대를 캡쳐한 동영상이 ‘힙합의 여왕’이란 조롱 섞인 제목으로 유머엽기 게시판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네’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선보인 이번 복귀 싱글들은 그렇게 웃음거리가 될 만한 것들이 아니다. 이효리는 편안하게 후크송, 댄스음악에 묻어가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찾으려고 고심했다. 이렇게 자신의 음악적 자의식을 확고히 하는 대중가수가 얼마나 있던가? 이번 복귀 싱글에서 느껴지는 건 이효리의 결단과 용기, 도전정신이다. 우리 주류 대중가요계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걸그룹, 아이돌 출신 가수로 여기까지 성장한 것에는 박수를 쳐줄만 하다. 이효리가 비난을 듣는 건 가창력 때문인데, 가창력이 매우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이 뮤지션에게 의미 있는 단 하나의 가치는 아니다.
이효리는 예나지금이나 스타일 중심의 뮤지션이다. 놀라운 가창력의 디바도 훌륭한 가수이지만 그 때문에 이효리가 평가절하 될 이유는 없다. 이효리가 이은미처럼 노래 부를 순 없지만, 이은미도 이효리같은 무대를 기획하고 소화할 수 없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것이다. 단지 지난 주 무대의 스타일이 ‘억’ 소리 날 만큼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이효리의 단점이 그 순간 부각된 것인데, 그것 하나를 가지고 이효리 자체를 비웃는 건 부당하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던 반면에 극단적으로 지켜주려는 시선도 있었다. 일부 네티즌은 이효리의 지난 주 무대가 혹평 받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비판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무조건 이효리가 최고라고 했다.
무조건적 비난이 부당한 것 이상으로 맹목적인 옹호도 좋을 것이 없다. 만약 지난 주 무대에 대한 비판이 봉쇄되고 팬들의 옹호 발언만 가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무대의 컨셉이 그대로 공중파에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자해다. 팬들이 무조건 ‘좋다좋다’ 하는 게 자신의 스타를 수렁으로 몰고 가는 셈이다.
비방이나 음해로부터는 자신의 스타를 지키는 게 맞겠지만, 비판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중음악계 팬들이 비판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비판한 사람을 원수 대하듯 하기 때문에 가요계에 냉정한 논의가 사라졌다. 악다구니만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에 있었던 이효리에 대한 극단적인 두 시선이 모두 아쉬웠다.
어쨌든 이번 이효리의 노래들은 대중적인 히트 여부와 상관없이, 걸그룹 ‘상품’에서 시작해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 성장하고 있는 한 31세 여가수의 보기 드문 분투로 박수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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