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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고양이폭행녀와 술집여자가 무슨 상관?

 

지난 주에 또다시 ‘00녀’가 나타났다. 이른바 ‘고양이폭행녀’다. 한 젊은 여성이 고양이를 폭행하고 내던져 죽게 한 사건이 알려져 인터넷이 들끓었다.


이 때문에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봉변을 당했다. 고양이폭행녀가 술집에 나가는 여자라는 억측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품이라면 당연히 술집여자일 거라는 추측부터, 술집여자가 맞다는 확인까지 있었다. ‘룸살롱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 아가씨’라는 구체적인 제보까지 나타났다. 어느덧 그 여성의 직업은 술집여자로 굳어지고 술집여자 전체를 능멸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술집여자가 하는 짓이 저렇지 뭐’라는 정도의 느낌인데, 여기에 차마 옮길 수 없는 수위의 증오에 찬 댓글들도 많았다. 그러더니 ‘술집여자랑 사귀는 남자는 누굴까?’라는 질문이 나오고, ‘남자는 깡패라고 하던데’라는 소문이 이어졌다.


결국 결론은 ‘뭐 그 밥에 그 나물 아니겠어요? 유유상종이라고 다 비슷한 연놈들끼리 만나잖아요’라는 식의 댓글들이었다.


그 폭행녀가 사실은 대학 휴학생이며 유흥업소 종사자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 같은 댓글들은 수그러들었다.



- ‘술집여자 드립’ 무엇이 문제인가 -


고양이를 때리고 죽인 것은 그 여성의 성격 탓이다. 누군가가 잘못을 했을 때 그 당사자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탓하거나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을 탓하는 것은 편견이다.


‘애비 없이 큰 놈이 다 저렇지 뭐’

‘흑인이 하는 짓이 다 저렇지 뭐’

‘한국인은 역시 믿을 수 없는 족속들’


이런 식의 발언이 툭툭 터져 나오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이 바로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였다. 우리 사회는 악랄한 지역차별의 사회였고, 레드콤플렉스의 사회였다.


‘호남인은 **하다’

‘빨갱이들이 다 그렇지 뭐’


라는 식의 사회였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과거다. 그래서 우리의 현대사는 어두운 이미지다. 눈부신 경제성장은 대단한 일이지만 사회 풍토는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못되었다. 그랬던 과거에 만연했던 편견이 또 있었다.


‘식모가 그렇지 뭐’

‘공돌이(공순이)가 다 그렇지 뭐‘

‘술집여자가 다 그렇지 뭐’

‘딴따라가 다 그렇지 뭐’


이젠 그런 과거와 결별한 새 시대가 찾아왔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언론에서 1990년부터 문화혁명, 즉 과거에 대한 문화적 단절이 있었고 특히 21세기에 들어서선 전혀 새로운 젊은이들이 새로운 한국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예인에 대한 인식도 ‘딴따라가 다 그렇지 뭐’하는 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젠 어떤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켰다고 해서 연예인 전체를 싸잡아 능멸하는 여론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할 뿐이다.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은 어두침침한 과거 구세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쿨하고 당당한 신세대라는 평을 듣는다. 젊은이들 스스로도 구세대와 자신들을 선명히 구분하며, 구세대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표명한다.


그런데 왜 여전히 ‘술집여자’인가? 어떤 젊은 여자가 문제행동을 했을 때 ‘쯧쯧 저건 술집여자일 거야’라는 식으로 반응한 건 구세대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왜 멋대로 단정하고 또 개인의 문제를 집단으로 환원하나? 이런 건 ‘쿨하지’ 않다.


‘술집여자들은 인간이하의 존재’라는 식의 유흥업소 종사자들에 대한 인격적 모욕, 윤리적 단죄도 구세대들이 하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을 직종으로 갈라 차별하는 것도 ‘쿨하지’ 않은 일이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모욕당해도 좋은 직업은 이 세상에 없다.


보통 ‘00녀’ 사태에선 그 개인에 대한 집단적 증오가 문제된다. 이번 고양이폭행녀 사태에선 그 증오에 더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까지 나타나 더욱 답답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잠깐 진보하는 듯했던 우리 사회가 날로 퇴행하고 있다.


이젠 신세대들에게서 구세대와 똑같은 차별, 편견까지 나타난다. 대학생들까지 없는 사람, 약한 사람을 무시하는 판이니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중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들끓는 네티즌 여론에서도 그런 세태가 감지된다.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의 구체제에 혐오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현재의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갈 한국 사회도 과거에 비해 그리 크게 나아진 모습일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