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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억지 기부쇼 무엇이 문제였나

 

<무한도전> 연말 ‘쓸친소’ 특집이 불쾌한 웃음을 남기고 마무리됐다. 웃기기는 웃겼다. 지난 주부터 이어진 호키포키 댄스는 여전히 ‘엉망진창 웃음판’을 선사해줬고, 기부경매는 뜨겁게 달아오른 열기로 재미를 줬으며, 후반부에는 스피커폰 간접 통화라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빵’ 터졌다.

 

이렇게 재밌기는 했지만 불쾌한 뒷맛을 남긴 건, 프로그램이 출연자들에게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쓸친소’ 출연자들이 입장할 때부터 입구에 모금함이 놓여 있어서 황당했다. 카메라가 따라다니며 촬영하는 가운데에 모금함에 돈을 넣으라고 하면, 당하는 입장에선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장면은 잠깐 사이에 지나갔기 때문에 하나의 이벤트 설정이라고 여겨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결산 보도를 보니 기부함에서만 120만 원이 걷혔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넣었겠지만, 외부인사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돈을 내라고 한 것 자체가 당황스럽다. 과연 카메라 촬영이 없는 상태에서 그날 출연자들이 지나치는 길거리에 기부함이 놓여있었을 때도 그들은 무언가를(돈이든 상품권이든) 넣었을까?

 

 

 

본격적인 문제는 28일 방영분에서 터졌다.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을 앉혀놓고 기부 경쟁을 펼치도록 했다. 자신들이 섭외한 출연자들에게 스튜디오에 와서 돈을 내도록 하고 그것을 방송의 주 내용으로 삼은 것이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송프로그램은 출연자를 섭외해서 돈을 주고 촬영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꾸로 출연자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칙이다. 안 그래도 <무한도전>은 그전부터 출연자에게 돈을 내라고 강요하는 설정을 종종 방영하는 문제가 있어왔다. 예를 들어 전체 제작진 식사비를 한 멤버가 내도록 카메라 앞에서 요구하는 것인데, 이런 비용은 출연자가 아닌 방송사가 부담해야 맞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내는 사람이 주로 박명수나 정준하 같은 <무한도전> 고정 멤버들이기 때문에, 하나의 가족처럼 되어버린 <무한도전> 팀의 특성상 가끔씩 한 명이 ‘쏘는’ 것은 훈훈한 이벤트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번엔 당하는 사람들이 외부 출연자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 설정이었다는 점, 또 그 방식이 서로가 돈을 더 내도록 경쟁을 붙이는 구도였다는 점이 특히 문제였다.

 

<무한도전> 정도 되는 화제의 프로그램은 거의 대부분의 연예인이 선망한다. 어떡해든, 하다못해 돈을 내고서라도 출연하고 싶은 것이 연예인으로선 인지상정이다. 그것이 말하자면 <무한도전>의 권력인 셈인데, 그렇게 연예인들을 불러모아서 돈을 내도록 하는 것은 권력의 부적절한 사용이다. 부적절한 권력이 별 게 아니다. 평소 같았으면 돈을 그렇게까지 안 낼 텐데, <무한도전> 속의 그 상황에선 돈을 내도록 하는 것. 바로 그런 게 부적절한 권력이다.

 

이것은 사실상의 강요다. 연예인으로선 반드시 <무한도전>에 나가고 싶고 그 속에서 주목 받으려 하게 마련인데, 프로그램이 ‘그러려면 돈을 내야 한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단지 기부경매상황극이었다면 괜찮지만, 정말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 경매를 통해서만 799만 원이 걷혔다니, 이건 너무 과도하다.

 

경쟁을 붙여서 점점 자극을 높여야 하는 코미디 상황극과 실제 지불해야 하는 돈을 연동시켰기 때문에 액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예능에서의 인기에 목숨을 건 예능인들은 이런 상황극이 벌어지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다. 결국 본인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로 치달아 액수가 치솟게 된다.

 

돈으로 단독샷을 사는 구도처럼 된 것도 문제고, 카메라 앞에서 액수를 공개적으로 밝히도록 해서, 액수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인 것처럼 오인되도록 만든 것도 문제다. 벌써부터 게시판엔 이번 경매에 큰 액수로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건 순수한 기부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런 방송이 많아지면, 돈으로 호감 이미지를 사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돈을 안 내는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만 있게 된다. 돈 내는 사람만 주인공하고, 안(못) 내는 사람은 병풍 만드는 예능. 카메라로 찍으면서 돈 내라고 요구하는 예능. 새해엔 이런 모습은 안 보길 바란다. 기부는 각자 알아서 편하게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