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케이블TV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시청률 10%에 육박하며 지상파 방송사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영향력 면에서는 이미 지상파를 완전히 압도했다. 20~40 세대 시청 층에선 동시간대 전체 1위를 기록했고, 콘텐츠파워지수에서 <무한도전>, <상속자들>과 함께 1위를 다투고 있다.

 

방송가 종사자들이나 네티즌 여론을 통해 체감되는 인기는 완전히 신드롬 수준이다. 지난 <응답하라 1997>의 경우도 시청률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 신드롬을 일으켰었는데, 이번 <응답하라 1994>의 인기는 더하다. 이 정도면 역사적 사건이다. 우린 지금 한국 매체사에서 아주 의미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래시계>가 그랬다. SBS가 처음 생겼을 당시 KBS나 MBC 같은 기존 지상파 방송사들에 비해 그 위상이 한참 뒤쳐졌었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지상파 방송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럴 때 김종학 감독, 송지나 극본의 <모래시계> 폭탄이 터진다.

 

<모래시계>는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즉 시청률과 작품성 모든 부문에서 방송계를 뒤흔들었다. 이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 SBS는 비로소 기존 지상파 방송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오르게 된다.

 

특히 <모래시계>가 SBS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이유는, 이것이 관습적인 통속드라마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만약 불륜에 시월드에 울고짜는 신파나 신데렐라 로맨스 같은 익숙한 설정이었다면, 시청률이 잘 나왔어도 문화적 파장을 그렇게 크게 일으키진 못했을 것이다. <모래시계>는 기존의 통속 드라마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혁신을 감행했고, 그것이 바로 신생 방송사 SBS의 위상 제고로 이어졌던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도 그렇다. 일단 양적인 면에서 보면 <응답하라 1997> 당시에 순간 최고 시청률을 8% 수준까지 올리며 지상파를 위협하더니, 이번 <응답하라 1994>는 순간 최고 10%를 넘어버렸다. 게다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실질적인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는 이미 지상파를 압도했다.

 

질적으로 보면, 작품성에서 기존 통속드라마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모래시계> 때와 비슷하다. jtbc의 <무자식 상팔자>가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문화적으로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진 못한 것은, 평범한 주말 통속드라마와 비슷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응답하라 1994>는 지상파가 하지 못했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요즘 지상파 드라마는 ‘재벌과 막장의 난’이다. 재벌 신데렐라 이야기나 막장 가족사 이야기를 빼놓고는 도무지 지상파 드라마가 성립이 안 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원성이 극에 달했고, 그에 따라 심지어 일일드라마 작가 퇴출 서명 운동이라는 초유의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응답하라 1994>는 사람들의 답답증을 풀어주는 새로운 바람이 되고 있다. 여기엔 재벌도 없고, 신데렐라도 없고, 시어머니의 뺨때리기나 시누이와의 신경전도 없다. 학교를 배경으로 했지만 학교폭력이나 왕따 같은 설정도 없다. 이 작품은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선 보기 힘든 ‘순수’를 다루고 있다.

 

 

물론 <모래시계>가 그랬듯이 한국 드라마 역사의 새 장을 열 만큼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거나, 국민적 상처를 씻어줄 만큼 묵직한 사회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벼운 시트콤 느낌의 젊은 취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지상파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움으로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뉴미디어 다채널 시대에 대한 장밋빛 전망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그 전망들은 전혀 실현되지 못했고 케이블TV는 오랫동안 지상파의 절대적 위상에 눌려왔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바로 이런 역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TV의 위상이 지상파와 경쟁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가는 새 시대 말이다. 1990년대에 기대됐던 뉴미디어 다채널 경쟁 새 시대가 <응답하라> 시리즈와 함께 20년 늦게 당도했다.

 

<응답하라> 시리즈, <슈퍼스타K>, <꽃보다 할배> 등이 그 변곡점을 함께 구성하고 있다. 지상파는 과거 독점적인 방송사업자로서 기존의 성공공식에만 안주해면 시청률을 쓸어담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청률을 산정하는 지표에 휴대기기 시청 등이 포함되기 시작하면 지상파의 아성은 더 빨리 무너질 수 있다.

 

케이블TV의 도전에 지상파 방송사가 응전하는 길은 혁신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지상파 방송사는 중년 주부들이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시청률에 취해 천년만년 ‘막장대로’의 한 길로만 내달릴 태세다. 언제까지 ‘오로라 공주님’ 손을 부여잡고 ‘왕가네 식구들’과 잔치판을 벌일 것인가? 결연하게 혁신하지 않는다면 수십 년을 지켜온 지상파 아성도 흘러간 옛 노래가 될 수 있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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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윤성 2014.01.08 10:5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제가 50대 중반으로 치닫는 나이에 가장 저질적 한국사회 요소를 정치와 막장 드라마로 꼽고 있던 차였습니다. 아침에 출근 준비 중 아버님이 드라마를 볼라 치면 평온한 마음은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며 머리끝이 섭니다. 사실 외국에 20년 가까이 살다 들어와 이런 막장 분위기를 접하며 간혹은 감정을 추스리지 못 하고 트러블을 부를 때도 있지만 한결같은 내 마음은 우리의 작가?들 수준도 수준 이지만 시청률을 고집하며 한국인 정신문화를 끝없이 호도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모두 일괄사표를 제출하여 정신을 차리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님 계속 좋은 자대를 대주세요 (:

  2. 야 씨발 내가꺼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