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천하’라는 말이 통용됐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예능계의 절대적인 투톱이라는 뜻이다. 한때 유재석과 강호동은 각각 네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한 주간의 화제를 양분했었다. 두 사람의 위상은 단지 예능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 방송연예계 전체의 투톱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예인조차 동경하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다.

 

인터넷에선 이른바 유빠 군단과 강빠 군단이 주말마다 대회전을 펼쳤다. 대중문화계에서 수많은 이슈들이 나타났었지만 유빠와 강빠의 대립만큼 오랫동안 그 화제성을 유지한 이슈는 없었다. 이 둘은 그야말로, 한국 대중문화계의 중심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유재석은 개그맨으로서 어려움을 겪다 서세원의 토크박스로 뜨긴 했지만, 여러 방송 MC들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강호동은 개그맨으로선 승승장구했지만 MC로 정착하는 데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짝짓기 예능을 통해 MC로 자리잡게 되지만, 그 역시 수많은 방송 MC들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유재석, 강호동보단 신동엽이나 김용만, 남희석 같은 이들이 더 돋보였다. 이들은 스튜디오 토크에서 탁월한 재치와 안정감을 자랑했다. 그러던 차에 리얼버라이어티 혁명이 터진다. 카메라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고, 여러 명의 출연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혼돈과 소란스러움은 재기발랄한 MC 한 명의 원맨쇼를 선보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출연자들이 경쟁적으로 떠들고 서로 싸워대는 진흙탕에서 필요한 건 원톱 MC가 아닌 지휘자였다. 유재석은 출연자들 모두를 배려하며 서로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절묘한 지휘자로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강호동은 어떤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한 순간에 정리해버리는 카리스마로 역시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리얼버라이어티 새 시대는 동시에 생고생의 시대이기도 했다. 스튜디오에 앉아 서너 시간 떠들면 되는 일반 예능하고는 차원이 다른 체력이 요구됐다. 유재석과 강호동은 이 생고생의 시대를 선도할만한 체력과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리얼버라이어티 형식이 한 순간에 혁명을 일으킨 건 대중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이 주는 생생함을 경험하자 기존 예능의 형식은 한 순간에 구시대가 돼버렸다. 대본으로 사전 기획되는 포맷의 답답함을 이제 시청자는 참을 수 없게 됐다. 돌발상황이 수시로 터지고 막말 돌직구가 난무하는 리얼은 기존 예능이 따라올 수 없는 자극을 줬다.

 

자극성은 야외취침이나 벌칙, 과제 수행 등을 통해 그 수위를 높여갔다. 처음에 성인 남성 한 명이 초겨울에 몸을 살짝 물에 담그기만 했을 때 대중은 깜짝 놀랐었지만, 이내 한 겨울 전원 입수에 익숙해졌고 그에 따라 리얼버라이어티는 자극성을 점점 더 강화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또 우애와 인간미, 진심을 통해 전해지는 감동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출연자들이 마치 가족처럼 형제애를 나누는 모습이 시청자에게 힐링의 체험을 하게 한 것이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세상에서 시청자는 인간미, 가족애 등을 갈구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리얼버라이어티 전성기가 도래했고 그 흐름을 주도한 유강천하도 공고해졌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튼튼했던 유강천하가 무너진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도 역시 같은 이유다. 유강천하는 리얼버라이어티에 의해 생겨났고, 리얼버라이어티에 의해 무너졌다. (유강천하가 무너졌다는 건 이 둘의 인기가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과거와 같은 절대적 위상이 아니란 뜻이다. 실제로 유빠강빠의 쟁투가 주도하던 게시판 문화가 요즘엔 다양한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다변화됐다.)

 

리얼의 생생함에 맛을 들인 시청자들은 더 생생한 리얼을 원했다. 자극성이 강해지자 시청자는 더욱 강한 자극을 원했다. 형제애, 인간미, 우애 등을 통해 감동을 받으면서 더욱 강한 감동을 원하게 됐다. 바로 그래서 이젠 유재석, 강호동이 굳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더 생생한 리얼, 더 강한 자극성, 더 강한 감동을 주면 되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 혁명 2막이다.

 

리얼버라이어티 혁명은 재기발랄한 스타 MC들이 아닌 소탈한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예능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더 강한 리얼을 원하는 대중에 의해 다시 한번 물갈이가 전개된다. 더 안 웃긴 연예인 혹은 아예 일반인이다. 그리하여 <진짜 사나이>, <아빠 어디가>, <정글의 법칙>, <꽃보다 할배> 등 스타 MC 없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가 도래했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고생의 강도가 점점 더 높아진다는 점이다. 강한 고생을 하다보면 눈물도 저절로 나고, 감동도 쉽게 만들어진다. 그런 이유에서 <진짜 사나이>나 <정글의 법칙> 같은 요즘 리얼버라이어티에선 눈물이 쉽게 터진다. 이런 게 보통은 감동 예능이라고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대중의 자극성 요구에 의해 고생의 수위가 올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대중을 자극하기 위해 연예인들은 어느 정도까지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보면 유강천하 때가 더 나았던 것도 같다. 그때만 해도 야외에서 1박 정도 하는 걸 최고의 고생으로 쳤으니 지금보단 훨씬 인간적이었다.

 

Posted by 하재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말 날카롭게 전체의 흐름을 정리해 주셨네요..
    단독 엠씨방식에서
    여러사람이 떠드는 쪽으로 개편되면서 조율자가 필요한 방송으로
    다시 엠씨가 아예 없는 쪽으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