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수능 시험을 바꾸면 교육이 나아지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CSAT)1993(94학년도)에 처음 실시돼 25년이 흘렀다. 그전까지의 학력고사가 지나치게 교과서 암기주입식 교육을 초래한다는 반성에서 나온 개선책이다. 이름을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바꾼 것 자체가 고교생들의 지나친 학력경쟁을 지양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능으로 바꿨다고 해서 특별히 한국 교육의 창의성 부문이 향상됐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옛날과 비슷하게 공부하고, 역시 옛날과 비슷하게 시험을 치른다. 달라진 건 과목과 점수가 명쾌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과목 이름이나 석차를 산정하는 방식 등이 더 복잡해졌다는 정도다. 표준점수니 백분위니 절대평가니 하는 난해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민주화 세력은 군사정권의 교육방식을 매우 싫어했다. 고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문화, 그리고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지식암기식 교육 말이다. 민주화 이후 이러한 교육체제를 혁파하는 것이 제일 과제가 되었다. 보수진영도 군사정권의 통제적인 교육체제에 불만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위한 국가대개조를 추구했기 때문에 교육체제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 이런 사회적 에너지가 모여 구체제를 대표하는 학력고사가 상징적으로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수능이 시작됐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신체제가 도래한 것 같지는 않다. 이 나라가 본격적으로 사교육 지옥에 빠진 점이 달라졌다고나 할까?

 

수학능력시험이라는 단어에 담긴 아름다운뜻처럼, 개혁자들은 처음에 이상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해인 93년엔 수능을 두 번 치렀다. 820일과 1116일이다. 단 한 번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짓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많았었는데, 두 번 시험 봐서 그중 잘 나온 점수를 선택하도록 바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두 차례 시험의 난이도를 맞추기가 어려웠고, 결국 다음 해부터 한 번 시험으로 회귀한다. 한 해만에 회귀한 이 사건이, 수능이 원래의 뜻과는 달리 암기식 교육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96학년도 수능은 만점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불수능이었는데, 97학년도엔 더 심했다. 학력경쟁을 붙이는 게 아니라 단지 수학능력만 확인하는 정도라면 이렇게 어려울 이유가 없다. 결국 변별력과 학력향상에 매달린 것이 문제를 더 어렵게 몰아갔을 터다.

 

97학년도 불수능에 대한 반성으로 98학년도부터 난이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다. ‘보수정권 불수능 진보정권 물수능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민주화 세력은 학생들을 시험지옥에서 구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쉬운 문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보수진영은 문제가 쉬워지면 국가경쟁력이 하락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 이른바 일류대라는 곳들이 변별력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요구하는데 보수진영 쪽에서 거기에 호응하는 경향이 있다

01학년도엔 만점자가 66명이 나와 역대급 물수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만점 받고도 정시에서 서울대에 떨어진 수험생이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정부는 문제를 쉽게 낼 뿐만 아니라, 수능 점수를 등급제로 바꿔 경쟁의 압력을 대폭 줄이려 했다. 하지만 바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도 수능 절대평가 등급제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현재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학력고사를 수능으로 바꿨지만 좋아지지 않았던 것처럼, 절대평가 등급제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히려 상황이 더 꼬이기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엔 아주 극단적인 대학서열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무조건 최고 서열의 학생을 뽑으려 한다. 입학시험이 애매하게 바뀌어 그 서열을 가려주지 못하면 다른 방식으로 고르는데, 그게 더 문제가 크다. 학생부종합전형처럼 부모 재산에 의해 좌우되는 부문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두고는 입학시험 방식을 어떻게 바꿔도 문제를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수능도 대학서열체제를 위한 변별력에 맞추다보면 자연스럽게 학력고사로 귀결된다. 창조적이고 주관적인 답으론 1등과 2등을 변별할 수 없으니까. 민주화 이후 입시 개선이 계속 실패한 이유다. 대입 시험이 아니라 대학서열체제에 개혁역량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