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작가와 조승우가 만났던 tvN '비밀의 숲‘은 단연 2017년 최고의 작품이었다. 뉴욕타임스 선정 그해 ‘국제 TV 드라마 TOP 10’에 한국 드라마로는 유일하게 뽑히기도 했다. 그 두 사람이 다시 함께 한 작품이 JTBC ‘라이프’다. 당연히 관심이 집중됐다. ‘비밀의 숲’은 공들인 취재를 바탕으로 검찰의 실체를 형상화했다. ‘라이프’의 배경은 병원이다. 이수연 작가가 그린 병원은 어떤 모습일까?
의료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대표적인 장르 중 하나다. 생명을 살리려는 의료진의 사투가 보편적인 감동과 긴박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거의 시청률 불패 수준이다. 과거 의료드라마는 병원을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환자와 그들을 살리려는 의사의 휴머니즘적 공간으로 그렸다. 의료진들의 러브라인도 물론 중요한 요소였다.
2007년 MBC '하얀거탑‘이 의료드라마의 판을 새로 짰다. 여기서 병원은 권력 투쟁의 전장이었다. 병원 내부의 복잡한 알력관계를 마치 해부하듯 묘사했다. 그리고 특수효과로 수술 장면을 리얼하고 긴박하게 만들어냈다. 이 흐름들이 이후 의료드라마에 고스란히 이어져 최근까지 의료드라마에선 의사들이 환자도 걱정하고, 사랑도 하고, 긴박하게 수술도 하면서 동시에 내부 투쟁까지 담당했다. 보통 그 투쟁의 전선은 병원을 이용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득권층과 거기에 맞서 생명윤리를 지키려는 일선 의료인 사이에 쳐졌다. 이 정도가 한국 의료드라마의 흐름이었다.
‘라이프’의 출발은 전형적인 구도 같았다. 재벌이 병원 재단을 인수해서 구승효(조승우 분)를 사장으로 파견한다. 구승효는 노조파괴자로 악명 높은 냉혈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병원에 부임하자마자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적자 3과를 구조조정하려 한다. 이윤만을 우선하는 자본의 논리다. 예진우(이동욱 분) 등 병원 의사들은 생명윤리, 의료윤리를 명분으로 이에 맞선다. 한편으론 병원 내부에서 병원장과 부원장 자리를 놓고 암투도 진행된다. 여기까진 많이 봤던 구도다.
이수연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자본을 비판하는 의료인들도 당당한 입장만은 아니다. 끈끈한 동업자 정신으로 환자가 사망에까지 이른 의료사고 은폐에 모두 함께 한다. 명의로 소문난 관절 전문의는 알고 보니 안 해도 될 수술을 남발하면서 명성을 쌓은 것이었다. 이런 과잉진료 실태를 작품은 “척추 전문 병원 하나 생기면 그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다 사이보그 된다”고 야유한다. 간부급 의사의 절대 권력 때문에 대리수술이나 폭언, 갑질 등의 관행도 묵인되는 현실을 그렸다. 이런 실태에 자본을 대리하는 구승효 사장이 오히려 분노한다. 일반 기업 같으면 이런 식의 경영 행태가 용납되지 않는다. 특히 소비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은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구승효는 경영실태조사를 통해 ‘자본의 합리성’으로 의료계의 폐쇄성에 대립한다.
선악이 모호해졌다. 그 전 의료드라마들처럼 대립구도를 단순하게 짰으면 시청률이 더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연 작가는 복잡한 구조를 선택했는데, 결국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이 복잡함 속에서 ‘병원’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냐고 작품은 묻는다. 당연히 정답이 생명윤리로 정해진 질문이긴 하지만, 현실에 깊이 뿌리박은 생생한 의료계 묘사로 인해 작품의 울림이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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