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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조롱당하는 대종상, 심사위원은 억울하다

55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희대의 촌극이 벌어졌다. 의문의 대리수상자 파문이다. 수상자중 불참자가 너무도 많아 대리수상 퍼레이드가 펼쳐졌는데 그중 압권이 음악상의 남한산성류이치 사카모토를 대신한 한사랑의 등장이었다. 보통 영화제 대리수상이면 1차적으로 해당 영화 관련자나 인연이 있는 사람이 하고, 아니면 그날 참석한 유명인이 하는데 한사랑은 관련자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어서 한사랑이 누구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한사랑은 주최 측의 연락을 받고 가서 상을 받은 것이고, 아는 언니에게 트로피를 맡기고 화장실 간 사이에 어떤 여자들이 와서 트로피를 달라고 하길래 언니가 줬다고 하더라라고 해명했다. 대종상 트로피를 이렇게 가볍게 내돌렸다는 것이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다. 시상식 직후엔 대리수상한 조명상 트로피가 행방불명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 사건을 더욱 역대급으로 만든 것은 현장에 남한산성제작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 김지연 대표가 대리수상을 위해 나섰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멀쩡한 제작자를 놔두고 아무 상관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겠는 사람이 상을 받는 풍경은, 적어도 이런 국가적 시상식급에선 아마도 전무후무할 것으로 보인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시상식 이후에도 황당한 사태는 이어졌다. 주최 측은 남한산성제작사에 연락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한국영화음악협회의 추천으로 대리수상자를 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제작자인 김지연 대표는 시상식 직전까지 연락을 주고받았고 참석 의사도 밝혔다고 했다. 좌석과 주차표까지 받았는데 연락이 안 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러니 처음부터 주최 측에게 제작사와 긴밀하게 소통할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던 대종상이다. 과거 미완성작인 애니깽이 수상한 사건부터 그후 숱한 수상작 시비들까지 더해져 대종상의 명성은 심각하게 실추됐다. 이 상황에서 황당한 대리수상 논란까지 터지니 대종상은 또다시 동네북이 되고 있다. ‘대충상이라며 희화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역시 믿지 못할 시상식이 치러졌다고 질타한다.

 

하지만 이번 대종상이 그렇게 대충시상한 건 아니었다. 작품상 버닝’, 감독상 ‘1987’을 비롯해 각 부문 수상자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납득이 가는 결과다. 그렇게 조롱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다. 과거처럼 사람들을 실소하게 하는 시상결과가 아니었다. 수상작 선정만 놓고 보면 대종상이 정상화됐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종상 논란은 심사위원들 입장에선 억울한 일일 게다. 진정성을 가지고 심사했는데 난데없는 대리수상 파문 때문에 시상식 전체가 도매금으로 조롱거리가 됐으니 말이다.

 

이번 논란을 보면 대종상의 문제는 단지 시상 공정성 이슈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상자를 잘 선정해도 시상식 자체를 황당하게 치르면 그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간다. 심사부터 시싱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심사위원단만 잘 꾸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주최자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과연 대종상을 계속해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과거부터 대종상이 일선 영화인들과 거리가 먼 일부 원로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대리수상이 줄을 이을 만큼 현역 영화인들이 불참하는 것은 그런 불신 때문이다. 이번에 제작사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주최 측의 라인을 통해 황당한 대리수상자를 내세운 것도 주최 측과 영화계의 단절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보인다. 과거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는 권위주의적 태도로 영화인들의 반발을 자아낸 바도 있다. 심사위원단뿐만 아니라 주최 측 자체가 현업 영화인들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혁신해야 대종상의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