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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방탄소년단의 참담한 사과, 원통하고 분하지만

 

방탄소년단 소속사가 최근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사과했다. 우리 입장에선 원통한 부분도 있고, 사과가 당연한 부분도 있고, 한편으론 아쉬운 부분과 분이 치미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사과는 해야 할 입장으로 몰렸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사과한 것은 큰 틀에서 적절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원통한 부분은 잔혹한 식민지배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가 폭탄 맞은 일을 애석해해야 하며 심지어 광복절 티셔츠 입은 일로 사과하는 입장에까지 처했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윽박지르고 피해자는 머리를 조아린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참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원폭 티셔츠라는 프레임을 짜서 집요하게 공격하고, 거기에 넘어간 국제사회가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심지어 유대인 단체까지 일본에 호응할 조짐이 나타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국제 사회 주류가 아니고, 일본보다도 힘이 없고, 우리 입장을 그동안 충분히 홍보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사과가 특히 당연한 부분은 나찌 문양이 들어간 모자다. 이건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으며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2014년에 잡지 화보 촬영 중 제작진이 방탄소년단에게 여러 가지 옷과 소품을 착용시키는 가운데 누군가가 문제의 모자를 씌워줬다고 한다. 원래 화보 촬영 중엔 제작진이 걸쳐주는 데로 입고 찍는 것이고 당시엔 방탄소년단이 신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다. 사진이 공개된 후 문제를 인식하고 그때 이미 사과하고 사진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 혐한 세력이 미국 유대인 단체에 이것을 제보했고, 유대인 단체가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미 사과하고 사진까지 내려 끝난 사안이지만, 유대인 단체가 요구하면 다시 사과하는 것이 맞다. 나찌 문양 및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유사 이미지는 절대 금기다. 그런 문양이 들어간 모자를 화보로 찍었다는 것은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다. 이른 사과로 조속히 마무리하는 게 상책이다. 

아쉬운 부분은 이번 사과에 우리가 피해자라는 점을 어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사 아티스트가 원자폭탄 이미지가 들어있는 의상을 착용한 것에 대해 사과했는데 바로 이것이 일본의 프레임이다. ‘원자폭탄 이미지 의상이 아닌 우리나라 광복 기념 의상이라고 적시하며, 식민지배 피해자인 한국에서 일본 패망에 이은 광복이라는 역사를 담아 제작한 옷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 피해자에겐 사과한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 측이 너무 몰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변명하는 듯한 말을 구구히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언론이 나서서 이런 논리를 전파해야 하는데, 이번에 일부 언론은 반전반핵 의식이 투철한 때문인지 원자폭탄 이미지가 무조건 잘못 됐다며 과도한 오지랖을 발동해 가해자가 폭탄 맞은 것에 인도주의적 동정을 보내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소년단 소속사가 무조건 사과 이외의 선택지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분이 치미는 부분은 왜 우리만 남을 이해하고 사과해야 하냐는 점이다. 우린 유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가해자의 원폭 피해 고통도 이해하고 사과하려 하는데, 국제 사회 주류는 한국의 상처에 무관심하다. 나찌 비슷한 이미지만 나와도 부들부들 떨면서 일제 욱일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한국이 항의해도 무신경하게 대응한다.

 

이번 유대인 단체의 태도도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나찌 모자, 나찌 깃발 제보를 받았으면 비난하기 전에 먼저 사실관계부터 알아보는 게 순리다. 나찌 모자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미 사과와 사진 삭제가 끝난 오래전 사안이고, 나찌 깃발은 나찌 깃발이 아닐 뿐더러 한국 중견 가수의 창작 콘셉트이며 한국의 전체주의 국가주의적 억압이 횡행하는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라서 나찌와 정반대 내용이라는 점을 조금만 조사해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방탄소년단을 공격하는 일본 우익이 독일 나찌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미국 유대인 단체는 사실 관계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나찌 모자를 문제 삼고, 문제의 깃발과 퍼포먼스가 나찌와 무시무시하게 유사하다는 과도한 표현을 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자기들 상처, 자기들 사과 받는 것만 중요하다는 태도다. 고압적인 그들의 자세가 아쉽다.

 

어쨌든 사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억울하면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든 말든 그때도 국제사회는 관심 없었고, 지금 일본이 한국에 가하는 2차 가해에도 국제사회는 무관심이다. 이런 흐름을 돌리려면 우리가 힘을 기르고 홍보를 잘 하는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 주류가 우리 상처를 이해하고, 우리 사정을 알아보게 하려면 말이다. 이번 사태는 일본의 치밀한 홍보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제대로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우리 대중문화계의 의식이다. 한류를 세계로 내보내겠다면서 어떻게 국제사회의 절대 금기인 나찌 문양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황당하다. 그전부터 욱일기 사용도 그렇고 우리 대중문화계에 문제가 많았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스태프의 문제도 심각하다. 반드시 피해야 할 상징물에 대해서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 핵 등 대량살상 관련 소재는 인도적 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광복절 관련해서 쓰더라도 우리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비난당할 수 있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주의해야 이번처럼 피해자로서 광복절 기념했다고 사과하는 참담한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