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살림하는 남자 시즌2’는 가히 이 시대 최고의 시트콤이라 할 만하다. 정작 시트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드라마들이 힘을 못 쓰는 가운데 리얼리티 관찰예능인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연일 웃음을 선사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리얼 예능과 시트콤은 서로 상극이다. 시청자들이 리얼 예능에 원하는 것은 리얼리티인데, 시트콤은 작위적으로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리얼 예능이 시트콤 같으면 ‘폭망’이 필연이다. 과거에도 리얼 예능에서 설정 느낌이 나타났을 때 비난이 폭주했다. 국민예능이라던 SBS ‘패밀리가 떴다’도 참돔 낚시 설정, 대본 논란 등으로 침몰했을 정도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림하는 남자 시즌2’는 대놓고 설정인 것 같아 ‘이 정도면 차라리 시트콤’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도 인기를 구가한다. 리얼함이 생명이라는 리얼 예능의 법칙에서 벗어난 희귀 사례다.
그 중심에 김승현 가족이 있다. 제목은 ‘살림하는 남자’이지만 김승현이 본가의 살림을 하진 않는다. 김승현의 아버지, 딸,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김승현의 어머니에게 살림을 ‘몰빵’하는 전통적인 한국 가족이다.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시청자는 개의치 않는다. 이 가족의 일상이 ‘큰 웃음 빅 재미’를 빵빵 터뜨려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선명하고 매력적이다. 가족 한 명 한 명의 성격이 작가가 작정하고 만든 드라마 캐릭터보다 더 극적인 것이다. 김승현의 아버지는 말끝마다 ‘광산 김씨’를 내세우는 전형적인 가부장으로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툭하면 호통 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부인에게 굴욕을 당한다. 김승현의 어머니는 한 평생 광산 김씨 시댁에 짓눌려 살며 집안 대소사를 챙긴 며느리이자 어머니로 가끔 한을 폭발시키지만, 칭찬 한 마디에 녹아내리는 단순한 성격이다. 거기에 김승현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까지 신스틸러로 등장한다.
스토리 자체는 평범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표현력이 놀랍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못 받아 의기소침했다가 뒤늦게 카네이션을 받고 의기양양해진 김승현의 아버지가 형님에게 자랑하러 갔다가 자랑도 못하고 애꿎은 김승현의 동생에게 호통 치는 것 같은 스토리가 펼쳐지는데, 너무나 생생한 표현력에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뻔한 설정이 과도하게 이어지자 최근 반발이 일었다. 예컨대 김승현의 어머니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은 남편을 질투한다는 설정이 심하게 억지스러워서 식상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설정 논란도 진정성이 잠재웠다. 최근 김승현의 아버지가 김승현과 김승현의 남동생 집을 갑자기 방문한다는 설정도 사전에 카메라를 세팅한 티가 났지만, 김승현의 남동생이 고깃집 개업을 포기했다는 말에 망연자실한 아버지의 모습만큼은 누가 봐도 진짜 감정이었다. 삼복더위에 김승현 광고촬영 현장을 찾았다가 눈물 쏟는 어머니의 모습도 그랬다.
이렇게 진정성 있는 모습이 때마다 나오기 때문에 설정 시트콤 느낌임에도 이들의 일상이 진짜라고 시청자가 느끼는 것이다. 우리네 80년대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는 공감도 그런 진정성에서 만들어진다. 거기에 미혼부로 딸을 책임진 김승현에 대한 호감까지 어우러져 설정 느낌 충만한 이 리얼 예능이 최고 시트콤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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