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의 tvN ‘스페인 하숙’이 6.4%라는 비교적 좋은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호평 속에 지난 주말 막을 내렸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3단계에 걸쳐 변화했다. 1단계는 호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2단계에 이르러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러다 3단계에 다시 호평으로 반전,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이적한 후에 선보인 예능엔 언제나 호평이 쏟아졌었다. ‘스페인 하숙’ 중반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중반부엔 인터넷 화제성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반등을 이뤄낸 것에서 나 PD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 하숙’이 처음에 호평을 이끌어낸 요인은 설정의 절묘함이었다. 여행지에 가서 밥 먹거나 밥을 해주는 설정이 그동안 범람했고, 또 외국인에게 한식을 먹이고 그 반응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많았다. 그러던 차에 ‘스페인 하숙’이 스페인에 가서 밥을 해먹이겠다고 하자 식상한 설정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스페인 하숙’이 준 첫 느낌은 ‘신선하다’였다. 그냥 외국 관광지에서 한식을 파는 설정뿐이라면 식상했을 텐데, 순례자들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것을 대접한다는 설정이 절묘했다. 이것이 그냥 음식을 먹거나 팔기만 하는 여타 프로그램들과 대비되는 차별성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너무 단조로운 구성이 문제였다. 순례자들이 찾아오면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에 밥을 해먹이고, 다음 날 아침에 또 밥을 해먹인 후 작별하는 구성이 반복되자 ‘이젠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tvN ‘윤식당’, ‘현지에서 먹힐까’, ‘강식당’ 등이 여행지에서 식당하는 설정이고, ‘미쓰 코리아’는 해외에 나가서 밥해주는 설정이다. ‘커피프렌즈’는 카페를 여는 설정이었지만 여기에도 식사메뉴가 등장했다. 올리브 채널에선 ‘국경 없는 포차’가 해외 주점 영업에 나섰다. 여기에 ‘스페인 하숙’까지 가세하면서 ‘여행’, ‘음식’, 이 두 가지 코드의 자기복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페인 하숙’은 다시 반전에 성공하며 호평을 이끌어낸 것이다. 반전의 이유는 ‘진정성’이었다. 나 PD는 자극적인 설정을 추가하지 않고 지친 여행자들에게 정성 들여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한다는 기본 성격을 지켜나갔다. 그러자 거기에서 위로 받고 평안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아졌다.
손님이 단 한 명일 때도 이들은 임금에게 올리는 수라상 같은 한 끼를 준비했다. 한국인 순례자에겐 특히 각별한 한식이었다. 신선한 재료를 구해 제육볶음, 된장찌개를 만들고, 엿기름 티백으로 만든 식혜와 파이를 후식으로 냈다. 다음 날엔 순례 중에 요기하라며 샌드위치까지 쥐어줬다.
장사라기보단 넉넉한 손님대접이었다. 이것이 요즘 세상에서 느끼기 힘든 ‘정’을 느끼게 해줬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의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은 옛날 하숙집 정취를 전해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지친 순례자와 시청자를 동시에 위로해준 것이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비슷한 설정이어도 진정성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스페인 하숙’이 보여준 셈이다. 다만, 여행과 음식 방송 범람 속에서 앞으로도 차별성을 이어갈 수 있을 진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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