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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사회문화의 대전환, 이젠 워커밸이다

 

'워커밸'(worker-customer-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올해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점원과 손님 간의 균형적 관계가 올해 사회적 관심사가 될 거란 이야기다. 점원도 인격적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엔 손님들이 점원에게 반말을 하거나 심지어 욕설까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은 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주에게도 반말을 일상적으로 했다. 백종원도 과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거나 식당을 직접 운영했던 시절에 손님에게 반말 듣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그때문에 번듯하게 대접받는 사업가가 되려고 무리하다 크게 실패한 후에야 음식장사를 천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든 후부터 과거보다 더욱 친절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손님을 고객님으로 부르며 극단적으로 공손하게 응대하는 것이 점원의 당연한 자세로 여겨졌다. 과잉 친절은 점원이 마땅히 취해야 할 도덕적 규범으로까지 격상됐다.

원래부터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손님과 점원의 관계가 수직적인 문화였는데, 2000년대 이후엔 바로 그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더 강력하게 구현됐다. 이런 말이 많이 회자되다보니 일부 손님들이 자신을 정말로 왕이나 귀족처렴 여기면서 점원 앞에서 군림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여기에 인권의식의 미비까지 겹쳤다.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은 모두 시민이고, 시민과 시민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등이 있었던 봉건사회와 민주공화국의 다른 점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차등이 없다. 일단 존엄하면 다 똑같이 존엄한 것이지, 더 존엄하거나 덜 존엄한 차이가 있을 수 없어서다. 이래서 모든 시민에겐 존엄한 인간으로 인격적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

다만 역할이 다르다. 누군가는 관리자이고 누군가는 지시를 받는 사람이다. 또 누군가는 판매자이고 누군가는 소비자다. 이것은 단지 사회적 역할의 차이만을 뜻하는 것이지 인격적 종속 관계가 아니다. 소비자라고, 관리자라고 해서 점원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다. 이러한 인권의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우리사회에서 일부 관리자와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점원 위에 군림해도 된다고 여겼다. 시민사회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황금만능주의까지 겹쳤다. 원래 우리는 돈을 최고 가치로 여기지 않고 돈 얘기 자체를 노골적으로 하지 않는 문화권이었지만 IMF 사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젠 돈이 최고이고,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로 돈을 내세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재산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는 유사 봉건사회가 돼간다. 이렇다보니 돈 많은 손님, 돈 많은 업주가 돈 없는 점원을 하찮게 보고 무시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익지상주의와 직원경시가 판을 치는 기업문화까지 겹쳤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점원에게 극한의 친절을 강요하고, 손님을 불쾌하게 하면 손해 볼까 두려워 손님의 어떤 요구에도 점원이 그대로 응하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점원들은 손님이 화를 내면 손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기 회사가 무서워서도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됐다.

 

이런 구조에서 숱한 갑질 사건이 터졌다. 백화점에서 점원이 무릎 꿇는 건 다반사이고, 음식물을 점원 얼굴에 던지는 손님부터 전화로 폭언하는 손님들까지 수많은 갑질 사건으로 인터넷이 공분했다. 해도 너무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드디어 한국 사회문화의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그래서 '워커밸'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것이다. 손님 갑질의 온상이었던 백화점들도 이젠 갑질 고객에 대해 직원이 경찰 신고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고객 응대 매뉴얼을 수정하는 추세다. ‘고객이 무릎 꿇는 사과를 요구할 경우 단호하게 응대 종료와 같은 매뉴얼도 나왔다. 고객의 폭언통화가 일상이었던 통신사들은 폭언 고객에게 경고 및 고소고발이 가능하도록 매뉴얼을 바꾸고 있다. 직원의 갑질 스트레스를 풀어주려 힐링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회사도 늘어간다. 아주 조금씩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사회가 돼가는 것이다. 아무리 큰손 손님이라도 점원에게 함부로 대하다간 큰 코 다친다는 인식을 올해는 완전히 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