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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베토벤바이러스 강마에의 찌질한 복수 아름다웠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3회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1회 때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으는 과정은 어설펐다. 김명민의 캐릭터는 아직 이해되지 못했고 장근석은 허세근석으로만 보였다. 조증 환자처럼 연신 좌충우돌을 이어가는 이지아는 허공에 붕 뜬 것 같았다.


2회 때 김명민의 캐릭터가 비로소 살아났다. 재수없고 오만하고 까탈스러우면서 동시에 마음 속 깊은 곳에 콤플렉스를 간직하고 있는 ‘강마에’라는 인간이 생동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명민은 그 성격에 묘한 코믹함을 엮어서 미워할 수 없는 악인을 만들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명민 원톱의 카리스마로만 이끌어나갈 드라마처럼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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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에 이르러 허공에 떠있던 드라마가 지상에 안착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면적으로 까칠하기만 하던 장근석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채워지면서 드라마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장근석과 엮이면서 강마에의 캐릭터도 보다 풍부해졌다.


극 중에서 오케스트라에게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준 사건은 강마에의 ‘찌질한 복수’였다. 강마에는 예술적 자부심, 오만함으로 충만한 인간이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그는 타인을 능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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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내 악기야. 난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거고 니들은 그 부속품이라고.”


“저흰 사람인데요.“


“아니! 니들은 그냥 개야! 난 주인이고!”


인간 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예술의 세계에서 예술적 열등생들을 인간이하 취급하는 극단적인 자부심이다. 실생활에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것을 보면 완전히 정신이상자는 아니다. 예술의 세계에서만큼은 병적인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형이다.


극 중 장근석의 천재성이 그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다. 장근석은 강마에가 잡지 못한 음을 잡아냈는데, 급기야는 단원의 마음까지 얻었다. 더 나아가 강마에의 지휘권에까지 도전한다. 자기가 되려 했으나 되지 못했던 존재를 만난 강마에는 ‘찌질하게도’ 그를 배제하려다 실패한다. 그러자 상처받은 자존심을 보란 듯이 복수하는 것으로 회복하고 떠나겠다는 더욱 ‘찌질한’ 생각을 한다.


그 ‘찌질한 복수‘가 바로 최고의 지휘로 오케스트라로부터 아름다운 음악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마음껏 궁극의 음악을 느끼게 한 다음에 ’나 없으면 니들은 이거 못할 걸? 용용 죽겠지?‘ 하고 내빼는 유아같은 찌질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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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수의 일환으로 감행(?)된 지휘에서 비롯된 음악은 마법같았다. 극중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놀란다. 장근석도 놀란다. 동시에 나도 놀랐다. 음악도 아름다웠고, 그림도 좋았고, 드라마의 구성도 극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떠졌다.


나는 어떤 종류의 화면에 몰입할 때 눈이 커지는 증상이 있는데, 예컨대 스타워즈 4편인가 5편인가 마지막 장면에서도 눈이 커졌던 걸로 기억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 장면은 그런 블록버스터의 스펙타클은 아니었지만,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과 음악의 아름다움이 섞여 마치 스펙타클을 보는 것 같은 자극을 줬다.


여태까지 초연한 태도로 일관해 허세근석의 연장처럼 보였던 극 중 장근석이 그 연주로 마침내 변화한다.


“처음이었어요. 음악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껴졌던 거. 가르쳐주세요. 배우고 싶습니다.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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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강마에는 ‘찌질하게’ 복수심에 불타 짐을 꾸리고 있었다. 장근석이 이 말을 하는 순간 강마에는 멈칫하며 장근석과 마주한다. 스승과 제자. 동경하는 자와 스스로의 위대함을 모르는 어린 천재. 구스 반 산트의 영화 <굿 윌 헌팅>과 같은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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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에선 맷 데이먼이 장근석과 같은 천재로 나오고, <맘마미아>의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그 천재성을 알아보는 스승으로 나온다. 천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고, 이끌 수 있는 손도 있으되 스스로 천재일 순 없었던 사람과,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알고 보니 천재였던 사람의 만남. 이런 만남은 재밌다. 스승이 겪는 동경과 질투, 원망, 그리고 제자의 성장. 흥미로운 이야기꺼리다.


음악의 장인이 아니라 연기의 장인으로서 김명민이 강마에역을 맡은 건 적절한 선택이었다. 말하자면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자기는 목숨 바쳐 수술기술을 연마했는데, 자기와 코드도 맞지 않고 껄렁껄렁한 인턴이 ‘신의 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상황이다. 장준혁, 아니 강마에는 껄렁껄렁한 공무원 장근석을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키우게 될 것 같다. 그 속에서 극단적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강마에는 상처와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김명민이라면 이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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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풍성해지면서 극이 활발해지고, 그 속에서 스승은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제자는 음악적으로 성숙하고, 그 모든 이야기가 모아져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되는 구조로 갈 것 같다. 이게 말은 쉬운데 실제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강마에의 ‘찌질한 복수’로 빚어진 오케스트라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것으로 인한 단원들의 변화가 설득력 있게 느껴지면서 앞으로의 전개도 기대하게 됐다.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다. <베토벤 바이러스>, 클래식과 드라마의 만남은 일단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