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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타짜, 악독한 아귀 제대로 살렸다



<식객>에 이어 SBS 새 월화미니시리즈 <타짜>가 시작됐다. <타짜>는 방영 전부터 기대됐던 작품이다. 만화에 이어 영화도 너무나 훌륭했었기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한편으론 영화의 강렬한 느낌을 드라마가 맥 빠지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1편의 시작은 진부했다. 조폭을 상대로 타짜인 고니가 ‘작업’을 하다 걸려 도망치는 것이 오프닝이었다. 너무나 평범해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식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 실망했다.


하지만 중반부부터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니의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드는 과정이 잘 묘사됐다. 점차 사람이 넋이 나가더니 급기야 부인에게 손찌검을 하면서까지 도박에 ‘환장’하는 경로가 어색하지 않았다.


고니 아버지가 점점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긴장이 함께 느껴졌다. 마지막 판돈을 걸 때의 그 정신 나간 것 같은 표정도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아버지역의 안내상은 주말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도 나온다. 거기서의 ‘한원수’의 모습과 고니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긴장하는 와중에 조금 웃었다. 장롱에서 돈 빼면서 부인에게 손찌검하는 건 정말 ‘한원수’같았다.


고니 아버지를 그렇게 처참하게 만든 것이 지리산 작두를 도박판으로 끌어내려는 아귀의 계략이었다는 설정도 괜찮았다. 작두를 향한 아귀의 복수심은 고니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삼고, 고니는 다시 아귀를 향해 복수심을 갖게 된다는 구성이다. 고니와 아귀 사이의 긴장도를 높이는데 효과적인 구성이었다.


- 악독한 아귀 -


작두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민간인의 인생을 뭉개버리는 설정은 아귀의 악독하고 지독하고 야비한 성격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었다. 영화 <타짜>에서의 아귀 김윤석이 무시무시한 느낌이라면, 드라마 <타짜>에서의 아귀는 넌더리나게 싫고 미운 느낌이다.


아귀역은 김갑수가 맡았다. 김갑수의 존재감이 100% 발휘됐다. <연애시대>나 <밤이면 밤마다>같은 드라마에서 아버지역으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배우’처럼 보였다. 물론 <연개소문>에서 수양제역으로 정작 주인공인 청년 연개소문을 누르고 드라마를 <수양제전>으로 만들어버리는 ‘포스’를 과시했었지만, <타짜>의 아귀역이 더 강렬했다.


김갑수의 출세작인 <태백산맥>에서의 역할도 이렇게 지독하고 악독한 ‘염상구’역이었다. 그때도 김갑수는 <태백산맥>을 자기를 위한 영화로 만들어버렸었다.


작두와 아귀가 도박으로 대결하는 장면은 모처럼 드라마에서 영화같은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드라마는 전체적인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것이지, 특정 장면 하나를 잘 만들어 사람을 경탄하게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영화 <타짜>에서 느꼈던 도박에서의 경쾌함과 긴장감을 드라마가 살릴 수 있을까 했었는데, 경쾌함은 아직 없었지만 긴장감은 충분했다.


김갑수가 ‘구라를 치다가 걸리믄’ 손모가지가 날아간다고 할 때부터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사전에 마치 작두가 질 것처럼 분위기를 충분히 깔아놨기 때문에 김갑수의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불길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작두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아슬아슬했다. 잘 만든 장면이었다.


게임 후에 김갑수가 ‘넌 내 손에 죽는다. 똑똑히 들어. 너는 내가 죽여.’라고 이를 갈며 말할 땐, 정말 지긋지긋하게 미워보였다. 아역시대를 지나 젊은 주역 체제로 진입한 후 연기가 허공에 떠버린 <에덴의 동쪽>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월화엔 김갑수 ‘본좌’가, 수목엔 김명민 ‘본좌’가 연기의 카리스마를 책임지게 될 것 같다.


- <타짜> 1회는 성공적 -


한 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왜 순박한 피해자 가족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악독한 가해자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도록 배치했을까? ‘정의의 타짜’인 작두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지역차별이라는 악습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아쉬움이 남는 설정이었다.


게다가 주인공 고니가 사는 마을길은 분명히 전라도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로 보였다. 그곳에서 마을 아이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고, 외지인인 아귀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부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물론 촬영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라도에서 찍었어도 경상도라고 하면 그만이다. 다만 유독 최대의 악당에게 특정 사투리를 덮어씌운 설정에 개인적으로 유감을 약간 느꼈을 뿐이다.


고니의 아역 연기는 탄탄했다. 요즘 트렌드는 아역시대를 최소한 2회 이상 끄는 것인데 <타짜>는 1회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아역을 더 볼 일은 없다. 아역을 이어받은 성인 고니역의 장혁은 이미 연기력에 정평이 난 배우다. <에덴의 동쪽>에서는 송승헌으로 넘어가기 전에 미리부터 불안했었는데, <타짜>에선 그런 불안은 없을 듯하다.


영화 <타짜>에선 유해진이 웃겼었는데 드라마에선 고니 주변에 웃기는 사람이 없는 게 아쉽다. ‘평경장’역이 영화에선 카리스마였는데 드라마에선 임현식이 맡아 어쩌면 이 역할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지도 모르겠다.


<타짜> 1회는 성공적이었다. <에덴의 동쪽>과의 싸움이 볼 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