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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신의저울 생각보다 세게 나간다



<신의 저울>이 처음에 주의를 끌었던 이유 중엔 로펌이 등장한다는 것도 있었다. 극 초반에 대기업 비리를 캐려던 검사들의 대화 중에 이런 대사가 나왔었다.


“상대가 누군지 알지? 세계적인 기업에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과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조합이다. 기존 드라마에서 변호사는 부자의 대리인 정도의 위상이었다. <신의 저울>에선 로펌이 강력한 힘을 가진 행동주체로 등장한다.


검사조차도 ‘신명’이라는 한국 최고 로펌 앞에선 몸을 숙인다는 설정이다. 드라마 속에서 사법연수생들은 검사나 판사가 되는 것 이상으로 ‘신명’에 들어가길 꿈꾼다. ‘신명’ 대표의 딸은 법률귀족으로 나온다. 사법연수생인 여주인공과 ‘신명’ 대표의 딸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너 신명의 딸이라며? 신명이 어떤 곳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다들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니까. 내가 그 실체를 모를 줄 아니?”


 “신명의 실체가 뭔데?”


 “재벌기업 편에 서서 온갖 편법과 탈법을 주도하다, 이젠 투기자본의 첨병 노릇까지 한다더라. 나한테 충고할 시간 있으면 먼저 니 아버지한테 가서 해라.”

드라마 속에서 신명의 대표는 재벌과 외국자본을 대리한다. 외국자본을 대리하므로 신명은 한국의 지배자들과 동격이다. 외국자본 회장이 다녀가자 청와대 수석, 재경부 관료 등이 바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신명의 대표는 ‘짜식들’이라며 가소로워한다.


신명이 하는 일은 국내 은행을 외국자본에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은행의 상태가 너무 건전하다는 데 있다. 신명의 대표는 금감원장에게 빨리 은행의 상태를 ‘불건전’하게 만들어 팔아넘길 수 있도록 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여태까지 한국 드라마에 나왔던 서비스업 종사자로서의 변호사가 아니라, 한국사회 지배자로서의 위상이다.

이것은 외환은행 매각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법률자문을 했던 로펌은 한국 최고의 로펌인 ‘김앤장’이었다. ‘신명’에게선 ‘김앤장’의 냄새가 난다.


김앤장, 외국자본 국내진출 ‘법률 교두보’

김앤장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국내 입성 과정에서 거의 빠짐없이 법률 자문이나 대리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손’ 구실을 했다.

[한겨레 2006-04-18]


극 초반에 재벌을 기소했던 검사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또 신명이지?”


“예. 밑그림에서부터 법해석까지 전부 신명 솜씨랍니다. 설마 매각될까요?”


“아직도 신명이 어떤 덴지 몰라? 거긴 로펌이 아니라 로비스트펌이라니까. 아 거기 ‘고문’ 명단 한번 쭉 봐봐.”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투기자본-법률엘리트-정부관료’를 일컬어 ‘철의 삼각동맹’이라며 이들이 한국사회 파워엘리트 그룹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 소장 학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삼성과 고위경제관료와 김앤장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위관료와 김앤장의 연결고리가 바로 ‘고문’이다. 전 재경부 장관, 전 국세청장, 전 관세청장, 전 검찰총장,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의장, 전 법무부 장관, 전 금감원 관료 등이 김앤장과 관계를 맺고 있다.


‘김앤장의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 변호사의 실력보다는 ... 바로 고문 직함을 달고 있는 고위관료 출신들의 힘 ... 김앤장 고문들의 영향력이 없었다면, 재경부와 금감위의 입장이 론스타의 인수불가에서 예외승인으로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 고위관료 출신의 로펌 고문들이 법조브로커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법조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월간 말 2007년 6월]


전 정권 마지막 총리인 한덕수 씨도 김앤장 고문 출신이었다. 현 정권의 한승수 총리도 김앤장 고문 출신이다. 김앤장 고문 ‘가’에서 김앤장 고문 ‘나’로 정권이 교체된 것이다.


극중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은 살인을 저질렀다. 그 엄마는 자식을 위해 신명과의 혼사를 추진한다. 신명이라면 자식을 지켜줄 수 있을 거란 확신에서다. 그녀는 자식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명이 어떤 덴 줄 모르니? 수돗물로도 소금을 만들어내는 곳이야.”

한 마디로 무소불위라는 소리다. 무소불위는 과거 군사정권에게 쓰였던 말이다. 군사독재가 사라진 자리에서 폭주하는 시장독재, 개방만능주의, 관료와 로펌 등 비민주적 기구들의 득세를 이 드라마는 그리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정의파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라는데 그걸 외국자본에게 팔아넘기겠다니.”


여태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재벌이나 독재를 소재로 삼는 경우는 많았다. <모래시계>나 최근 <에덴의 동쪽>에선 과거의 성역이었던 카지노, 슬롯머신도 다뤄진다. 조선일보로 추정되는 세력도 <에덴의 동쪽>이나 <스포트라이트>에 등장했다.


<신의 저울>은 첨단(?) 이슈인 로펌과 금융개방을 배경에 깔고 있다. 대형로펌을 한국사회 파워엘리트로 설정한 드라마는 <신의 저울>이 처음인 것 같다. 김앤장은 베일에 가려진 성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존하는 권력’이다. 금융개방은 과거의 독재와 부패 그 이상으로 현재 한국인 고통과 직결 되는 핵심 사안이다.


<신의 저울>이 처음 시작했을 때 로펌이 언급돼 주목했었다. 한동안 그 이야기가 없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도 강도 높게. <신의 저울>, 생각보다 아주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