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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여자 훈육

 

세배 때 절하는 법이라는 1976년 1월 6일자 경향신문 기사다.


말은 세배하는 법이라지만 실은 여성 훈육을 위한 지침서같은 성격이다.


신여성들이 나타나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고 남자처럼 절하는 것이 퍽이나 보기 싫었나보다. 대놓고 ‘퍽 보기 흉하다’라고 쓰고 있다. 개인 의견을 내세우는 칼럼도 아니고, 정식 기사인데도 이렇다.


그러면서 여성답게 절하는 법을 가르친다.




공손하게 양손을 모으고 선 다음, 무릎을 굽히되 한쪽 무릎은 세우고 앉는다. 절이 끝나면 일어서서 2~3보 뒷걸음질로 물러서 얌전히 앉되 다시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두 손을 얌전히 모은다.


이것이 1970년대에 한국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한 단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요즘 아마 중앙 일간지에서 여성이 전통 예절을 안 지킬 경우 ‘퍽 보기 흉하다’ 따위의 기사를 내면 난리가 날 것이다. 


절하는 요령을 가르치는 기사 바로 옆에서는 가계 운영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 마디로 조신하게 처신하면서 알뜰하게 살라는 얘기다. 신문이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 훈육의 기능을 수행하는 현장이다.


이때 남자들이 많이 보는 정치 경제면엔 한자들이 아주 많았었다. 하지만 여자들을 가르치는 기사의 본문엔 한자가 거의 없다. 조선시대 때 한글을 여성과 상민을 위한 글자 정도로 여기며, 한자를 지배자의 문자로 쳤던 것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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