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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1박2일에 경고해주다?

 

재기발랄한 소품에 늘어지는 후일담이다. 지나치게 대작 위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에 <무한도전>은 ‘죄와길’이라는 기발한 소품으로 응수했었다. 이것이 ‘빵’ 터지면서 무려 약 3개월에 걸친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그런데 소품이었던 ‘죄와길’의 벌칙이 블록버스터로 나왔다. 알래스카에 가란 것이다. <무한도전>은 진짜로 알래스카에 갔다. 그리고 그것이 무려 3주에 걸쳐 이어지면서 2010년 <무한도전> ‘대박의 질주’에 쉼표를 찍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보여준 건 눈벌판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흰 눈 위에서 멤버들은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주야장천 게임을 해댄 것이다.


게임이 재미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재미가 있어도 문제다. 멤버들끼리 엎치락 뒷치락 게임을 재밌게 해봐야 ‘도대체 알래스카엔 왜 간 거지?’라는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미있을 가능성도 별로 없었다. 단조로운 눈밭 위에서 반복되는 게임이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간간이 ‘빵’ 터졌지만 대체적으로 몰입도가 떨어졌다. 



한편 알래스카팀과 갈라진 다른 팀은 번지점프대 위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이것도 악수였다. 배경과 상황의 단조로움이 알래스카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극히 단조로운 배경 속에 사람을 던져놓고 웃기라고 하면 웃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것도 몇 회에 걸쳐서 말이다.


프로그램은 유재석이 없어서 번지점프팀이 못 웃긴다는 식으로 몰아부쳤다. 유재석이 없으므로 진행할 사람도 없고, 상황극도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건 유재석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조로운 배경과 상황을 이길 장사는 없었다. 유재석도 알래스카에서 한 일이라곤 끊임없이 게임을 주도한 것밖에 없다.


어떻게든 분량을 뽑아내려고 게임에 몰두하는 건 <패밀리가 떴다>를 보는 듯했고, 멤버들이 몸을 던지는데 몰입이 안 되는 모습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노다지>를 보는 듯했다.


특이하거나 신기한 상황에 사람을 던져놓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몇 회를 때우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무한도전>은 멤버를 둘로 쪼개, 최근 절정에 달한 팀워크를 스스로 부수는 우를 범했다. 단조로운 배경에 지리멸렬해진 팀워크. 성공하기 힘들었다.



<무한도전>이 단조롭게 펼쳐진 눈밭 위에서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몰입이 안 되는 모습은 마치 <1박2일> 남극편을 위해 미리 해준 경고와도 같았다.


어딘가 신기한 곳에 간다는 설정만으로는 몇 회 분량을 소화할 수 없다는 경고 말이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활력을 길어 올릴 수 없는 광활한 눈밭의 적막함이 얼마나 비예능적 배경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혹한에 얼음 위에 쌓인 눈밭에서 야외 취침을 할 정도로 멤버들은 열성을 다했지만, 무정한 흰 눈밭은 밋밋하기만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1박2일>이 남극에 간다면 이번에 <무한도전>이 받은 질문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저기 왜 간 거지?’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을 해도, 이 의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눈밭 위에서 멤버들끼리 벌벌 떨며 하는 게임은 여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갔단 말인가? 그러므로 남극편같은 거대한 기획은 그에 상응하는 의미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


이번 남극편은 연기됐지만, 제작진은 나중에라도 갈 것이라고 한다. 일단 가면 이번 <무한도전>처럼 여러 회에 걸쳐 편성될 것이다. 극히 단조로운 배경을 극히 여러 회로 늘리면, 이번 <무한도전>처럼 분량을 확보하기 위한 멤버들의 인위적인 몸부림이 극대화될 것이다. 역효과가 초래될 수 있다.


물론 <1박2일>은 막연히 눈밭 위에서만 헤맨 <무한도전>과 달리 남극에서 세종기지 한국인 대원들을 만나 ‘스토리텔링’을 펼쳐갈 수 있겠지만, 눈밭 위에서 몇 주 분량을 소화하는 것이 그리 간단할 리 없다. 남극에 간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내용 기획에 치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 예능팀인 무한도전팀의 분량 뽑아내기 악전고투조차 적막하게 삼켜버린 알래스카의 무정한 눈밭이 <1박2일>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