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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이효리, 민망하고 자멸적인 무대

 

이효리의 본격적인 지상파 컴백 무대가 천안함 참사로 인해 한 주 미뤄졌다. 이것은 이효리의 이미지를 위해선 크게 잘된 일이다. 예정대로 지상파 컴백이 진행됐다면 그녀의 이미지가 땅끝까지 추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바로 직전에 있었던 케이블TV 컴백무대에서 이효리가 너무나 민망한 무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무대의 컨셉이 지상파에서 전 국민에게 방영됐다가는 지금껏 쌓아온 이효리의 공든탑이 흔들렸을 것이다. 참사가 이효리를 살렸다.


그녀는 케이블TV에서 세 곡을 선보였는데, 문제가 된 건 첫 곡인 '아임 백'의 무대였다. 이 노래는 이번 앨범의 컨셉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다. 즉, ‘힙합 + 자신감 + 카리스마’가 모두 ‘아임 백’에 들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맥락에서 이효리도 자신의 컴백 첫무대로 이 곡을 선곡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아임 백’의 무대는 ‘아임 백’과 이번 앨범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이효리가 가지고 있는, 앞으로 더 강화하려 하는 ‘자신감 + 카리스마’ 이미지를 모두 부숴버렸다.


툭하면 ‘사상 최악’이라는 식의 과장된 수사법을 언론에서 보게 되는데, 이번엔 진심으로 그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정말 사상 최악이다. 첫 무대로 해당 앨범의 컨셉을 완전히 부숴버리고, 가수의 기존 이미지도 망가뜨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전략까지 해체시켜버린 이런 황당한 경우를 ‘최악’이 아닌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아임백’ 무대의 문제 -


‘아임백’의 무대는 한 마디로 ‘애들이 까부는’ 스타일이었다. 기존의 농염한 섹시함을 넘어서서 ‘카리스마 여제’로 이미지 포지셔닝을 하려고 하는 이효리에겐 안 어울려도 심하게 안 어울리는 무대였던 것이다.


랩이 강조되는 노래의 특성도 이효리와는 맞지 않았다. 발음문제는 이효리의 약점 중의 하나다. 이효리는 똑 떨어지는 발음이 잘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대사를 할 때도 문제가 될 수준인데,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는 힙합 랩은 악수 중의 악수였다.


특히 복장이 재앙이었다. 이렇게 자멸적인 복장은 본 적이 없다. 이효리의 또 다른 약점은 신체비례다. 과거 걸그룹 1세대 당시엔 워낙 고만고만한 신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의 약점이 그리 부각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걸그룹 2세대는 길쭉길쭉한 신체를 기본으로 만들어버렸다. 이효리에게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녀는 걸그룹이 할 수 없는 화려하고 개성적이고 원숙한 스타일로 이 불리함을 돌파해왔다. 그런데 ‘아임 백’ 무대에선 ‘아이들의 껄렁껄렁’란 코디를 하고 나타났다.


이것은 이효리의 신체적인 약점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약점을 감춰도 모자랄 판에 극단적으로 키워서 광고를 해댄 것이다. 자폭이다.


댄스도 일반적인 율동 수준이었다. 파워풀하게 압도하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카리스마적인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만약 어린 걸그룹이 이런 무대를 보여줬다면 귀여운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효리는 아니었다. ‘에게? 이거밖에 안돼?’라는 실망감만 안겨줬을 뿐이다.


실망감을 넘어 안쓰러움마저 느끼게 했다. 게다가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가사와 너무나 극명히 대조가 되는 바람에 민망하기까지 했다. 정말 민망하다는 표현이 왜 이 세상에 필요한지를 알게 해준 무대였다. 덕분에 이효리의 카리스마는 망가지고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 ‘치티치티 뱅뱅’ 역시 이효리! -


‘아임백’ 무대의 실망감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그 뒤에 이어진 무대들까지 도매금으로 악평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그 뒤의 두 곡은 이효리의 명성에 값하는 무대들이었다. ‘아임백’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타이틀곡인 ‘치티치티 뱅뱅’의 무대는 ‘역시 이효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무대였다. 뭔가 조잡해보이는 뮤직비디오보다 본 무대가 훨씬 나았다. 이 무대에선 이효리의 자신감이 빛을 발했다. 안무에 조금 더 파워풀한 느낌을 살리면 더욱 강렬해질 것 같다.


서두에서 천안함이 이효리를 살렸다고 했다. 그건 이효리에게 ‘아임백’ 무대의 문제를 성찰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뜻이다.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아임백’ 무대 스타일은 이효리를 살려주지 못한다. 만약 지상파에서 그대로 선보였다면 더 큰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다. 케이블TV에서 그친 게 천만다행이다. 지상파에선 ‘치티치티 뱅뱅’과 다른 곡들로 본인의 장점을 살리는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 그러면 이번 케이블TV 무대는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임백’ 무대는 이효리의 존재감이 너무 커진 나머지 주변의 스크린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주변에서 만류했어야 할 무대였는데, 이효리가 하고 싶다는 말에 모두들 ‘예스 예스’를 한 것이 아닐까. 이효리에게 조금 더 냉정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