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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장재인탈락 슈퍼스타K의 고질병

결국 장재인이 떨어졌군요. 누구나 예상했었듯이, ‘빠순이’들의 위력이겠죠. 여성들이 주로 투표하므로 남성 도전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구도인가요?

작년부터 여성 투표에 의한 여성 불이익 논란이 있었는데 올해도 여지없이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성 출연자에 비해 여성 출연자들이 가차 없이 잘리는 일들 말이죠.

그에 반해 강승윤과 존박은 중간 본선 때 너무나 미흡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조차도 쉽게 다음 단계로 진입하곤 했죠.

박보람이 떨어지고 강승윤이 올라갔던 주의 이상한 상황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거든요. 이런 상황 속에서 사실상 우승자가 ‘매력남’으로 내정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었습니다. 여성 투표 쓰나미 앞에선 모든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한탄이지요.

이런 식으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면 그렇지 않아도 한국 가요계에 극심했던 ‘빠순이’들에 대한 냉소가 더욱 커질 것 같네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시청자 투표를 고집한 결과 한국 가요계 분란만 확대되는 것이지요.

작년에 <슈퍼스타K> 시즌 1이 마무리 된 이후에, 전문가 투표단을 만들어서 그들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하지만 올해도 시청자 투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네요.

이것을 두고 <슈퍼스타K>가 ‘시청자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것이 참여민주주의의 한 모델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죠. 한 멀쩡한 비판언론에서도 누군가가 이런 칼럼을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시청자 투표에 의한 결정은 ‘집단 싸움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투표하는 사람들끼리도 싸우게 되지만, 투표를 안 하는 집단과 하는 집단 사이에도 심각한 증오의 씨앗을 만들죠. 한국 가요계가 아이돌판이 된 이후 가장 큰 병폐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빠순이’인 것이죠.

<슈퍼스타K>가 이런 병폐를 확대재생산하며 싸움판을 조장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꼭 이럴 수밖에 없었나요?


시청자 투표는 또 불합리한 인간성 투표로 이어진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뭔가 거슬리는 성격의 소유자로 비친 사람을 즉각 매장해버리는 것이 요즘 네티즌들의 ‘정의감’인데요. <슈퍼스타K>가 진행되며 출연자의 언행이나 과거행적에 의해 누군가가 찍히게 되고, 그때 네티즌의 정의감이 발동되면 그 사람은 실력과 상관없이 바로 잘리게 됩니다.

문제는 TV 속에서 비친 잠깐의 이미지와 인터넷에 드러난 과거행적이 결코 어떤 사람의 인간적 실체를 말해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네티즌은 그것만으로 누군가를 단죄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구조에선 네티즌 손에 당락을 맡겨선 안 됩니다.

즉, ‘빠순이’ 문제로 보나 요즘 우리 네티즌 상황으로 보나 시청자 투표의 과중한 비중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요. 그런데도 <슈퍼스타K>는 요지부동이네요.

<슈퍼스타K>의 제 1 목적은 실력 있는 인재 발굴 오디션이 아닌,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강력한 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독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논란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오디션을 표방한 이상,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이것을 오디션이라고 믿으며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이상, 최소한의 공정성과 합리성만큼은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시청자 투표에 얼마나 문제가 큰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시청자 투표 비중을 줄여야 합니다. 대신에 신뢰할 만한 사람들로 심사위원단을 구성해서 그들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적절해보입니다. 그래야 ‘빠순이 분란’도 줄어들고, 네티즌의 인간성 단죄에 의한 문제도 사라질 겁니다.

독하고 재밌는 쇼도 좋지만, 이 정도 인기를 끌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됐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무성을 <슈퍼스타K>가 지켜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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