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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또다시 충격을 주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희대의 괴작 <무한도전>이 또다시 사고를 쳤다. 감탄, 또 감탄이다.

이번 나비효과특집은 별 의미 없는 개그 소품처럼 시작했다. 해외인 척하고 한국에서 촬영하는 개그 상황극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층 북극얼음방에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사태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아래서 튼 에어컨이 이층 북극방을 덥히고, 그것 때문에 녹은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와 홍수를 이룬다는 설정에서 지구온난화가 이내 떠올랐다.

‘유레카’의 체험이라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머리가 환해지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 아이디어의 힘이었다. <무한도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의 힘.


착한 예능, 공익 예능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럴 때, 지구온난화 문제를 주제로 결정했다면 전문가를 초빙해서 설명을 듣는다든지, 탄소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생활습관을 하나하나 퀴즈나 예능의 형식으로 풀어간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전개를 예상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열대를 상징하는 방과 북극 빙하를 상징하는 방을 아래위로 연결해서, 아래층의 이기심으로 인해 위층의 물이 아래층으로 직접 쏟아진다는 기발한 상황을 생각해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면적인 착한 예능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현재 지구가 처한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힘도 대단했다. 극지를 직접 촬영한 환경다큐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지구온난화의 인과관계를 피부로 느끼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번 <무한도전>은 위층의 얼음물이 아래층에 콸콸 쏟아지는 것으로 재난상황을 피부로 느끼게 했고, 이기심과 파멸의 인과관계를 정말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했다.

복잡하고 큰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추상화하는 능력이 인간의 지적 능력 중에 가장 상위에 있는 능력이라고 할 때, 이번에 보여준 ‘아래층 위층 알고 보니 한 집’ 설정은 <무한도전>이 얼마나 수준 높은 프로그램인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었다.


<인셉션> 음악이 흐르며 위층의 얼음이 급격하게 녹아내릴 때 당황해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선 예능적 과장이 아니라 정말 다급한 재난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층과 위층의 전화통화를 통해선,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기적 행동을 했을 때 결국 공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진리가 실감나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상황을 연출해낸 제작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괴물같은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의 의미를 확실히 보여준 특집이었다. <무한도전>은 그동안 한국 예능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이번 나비효과 특집은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프로그램을 사골 우려먹듯이 우려먹는 것은 식상할 일이지만,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연말 연예대상에서 우려먹어도 된다. 비록 유재석이 대상을 많이 받았지만, 올해도 MBC 연예대상은 <무한도전>과 <놀러와>를 이끈 유재석에게 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무한도전>과 <뜨거운 형제들>을 이끈 박명수에게도 최우수상 정도의 배려는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아무리 상을 몰아줘도 지나치지 않다. <무한도전>은 ‘클래스’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