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명량, 완성도 떨어진다고 감동까지 사라지나

 

버림받은 영웅은 인간의 마음을 울린다. 배트맨은 인간 세상을 구하지만 경찰에 쫓겨다닌다. 엑스맨도 공권력에게 쫓겨다니며 인간 세상을 구한다. 고지라는 인간들에게 포격을 받으며 괴물에 맞서 싸운다. 헐크도 쫓겨다니며 사람들을 구했다. 이렇게 쫓겨다니는 영웅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버림받은 선인’이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또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버림받은 영웅 그 자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이순신은 임진년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견내량을 굳게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 댓가로 주어진 것은 투옥과 고문이다. 임금이 이순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운을 떼자 고위 관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략을 해대면서 죄인으로 몰아붙였다.

 

목숨까지 잃을 뻔했지만 그를 구한 건 왜군의 재침이었다. 왜군이 다시 전면공세를 취하는 마당에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장수를 아예 없애버리는 게 영 찜찜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조는 ‘목숨만’ 살려줬다. 그러나 국문으로 인해 몸이 상해 후일 통제사에 복직됐을 때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이렇게 철저히 버림받고도 그는 또다시 나라를 구했다. 단 13척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전력으로 왕조차 수군을 그만 폐하자고 하고, 부하들도 다 주저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돌격대장 역할을 하며 나라를 구해냈다. 바로 이래서 ‘성인’이고 ‘성웅’이다. 단지 전투지휘를 잘 해서 위대한 게 아니다. 버림받고도 국가와 백성을 끝까지 지켜낸 그 단심. 그것이 어느 헐리웃 영화의 영웅보다 더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버림받은 이순신을 보며 한국인이 특히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한국인 자신이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국가 시스템은 국민이 아닌 소수 기득권자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나라가 진정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나라라고 실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버림받은 사람들이 버림받은 영웅을 보며 눈물 흘린다.

 

 

이순신의 지도력은 탁월한 전투지휘 그 이상이었다. 13척대 330척의 믿기 어려운 전투를 비롯해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불가사의한 지휘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중앙의 지원 없이 싸웠다는 데 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초강국 미국도 베트남전으로 국력이 기울었고, 이라크전으로 재정파탄에 직면했다. 전쟁은 그만큼 많은 물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전쟁에 승리하려면 막대한 보급이 필수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아무 지원 없이, 식량부터 시작해서 화살, 포탄, 옷 등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조달했다. 조총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남해안 일대에 농업과 함께 거대한 상공업 경제를 일으켰다.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군 협력체제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백성들의 민생도 해결했다. 그는 중앙으로부터 보급을 받기는커녕 거꾸로 중앙에 물자를 바쳤으며, 제주도까지 지원했다. 조선 수군이 완전히 궤멸되고 명량대첩을 치른 후 불과 6개월여 만에 다시 통제영의 위세를 회복했다고 할 정도로 그의 경영능력은 초인적이었다. 원균의 패전 후 이순신이 나타나자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술을 바치고, 이순신의 전사 후 운구행렬이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어버이를 잃은 듯 통곡한 이유는 이렇게 장군이 단지 잘 싸운 장수가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준 지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순신의 지도력이 위대했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데, 선조에겐 바로 이런 점이 가장 큰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싸움만 잘 하는 장수가 아닌 최고 지도자의 역할까지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엄청난 지도자가 스크린 한 가득 그려졌으니 한국인으로서 감동 안 받으면 그게 더 특이하다. 지금 <명량> 완성도 논란이 일어나며 이 영화에 대해 악평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그런 감동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악평이 마치 감동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과 감동, 존경 등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명량>은 편집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이야기도 아쉬운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엮은 배를 띄우면 침몰할 것 같다. 나중에 재편집을 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다. 그러나 장중한 음악과 전투신의 스펙타클, 고투하는 이순신 장군의 묘사 등이 한국인을 감동시키기엔 충분했다. 단점과 미덕이 공존하는 작품인 것이다. 단점을 인정한다고 미덕이 사라지진 않는다. 김한민 감독이 지금의 성원에 힘입어 보다 뛰어난 차기작을 그려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