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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조영남과 검찰여론재판 모두 이상하다

 

조영남이 결국 사기 혐의로 검찰조사까지 받고 말았다. 검찰은 조영남의 사기죄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는 상황이고, 한 여론조사 기관은 사기죄가 맞다는 여론이 74%라는 발표까지 했다. 조영남은 현재 사면초가 상태이고 상당히 실의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남 사건은 예술 사건, 연예인 사건, 열정페이 사건 등 복잡한 관점이 얽혀있다. 예술 사건으로 본다면, 이 사건에 검찰이 달려들어 수사하고 여론조사까지 실행된 지금의 상황이 역사에 남을 정도로 황당하다. 예술적 판단을 실정법이나 다수결로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관점에선 조영남의 작품을 대단한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연예인 사건으로 본다면, 조영남의 작품을 산 사람들이 그 작품을 스타 조영남의 손때가 묻은 소품이라고 알고 샀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면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이 관점에선 예술작품이 아닌 순수한 연예인 소품이었다면 구매자가 비싼 돈 주고 그것을 샀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어차피 미술작품으로 생각하고 샀다면 예술 사건의 성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술 사건의 성격이면 설사 구매자가 조영남 손때가 묻은 작품이라고 기대하면서 예술품을 샀더라도 그것에 예술적 속성만 있다면 조영남 손을 안 탔어도 사기가 아니다.

 

열정페이 사건은 조영남이 너무 잘 살기 때문에 터진 일이다. 조영남이 가난했다면 대작 작가가 가난하게 살아도 별 논란이 안 됐겠지만, 조영남은 너무 잘 살았다. TV에서 그의 부유함이 수도 없이 소개됐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을 그려준 사람은 형편없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니 조영남에 대한 반감이 증폭됐다. 이번 검찰 출두 때도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등장해 이런 반감을 더욱 키웠다.

 

조영남 입장에서 보면 열정페이가 아닐 수 있다. 대작 작가 송기창 씨는 한 편당 약 10만 원 꼴로 받았다고 주장했고, 먹지 대고 베끼듯이 간편하게 그려서 하루 몇 편씩도 작업했다는 인터뷰 기사도 나왔었다. 그렇다면 하루 몇 십만 원씩도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영남의 논리에선 송기창 씨의 작업은 예술활동이 아닌 단순노동이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작업자들을 불러 일을 맡긴 것과 비슷한 성격이다. 노동일을 맡기고 하루 10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줬다면 크게 적은 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선 그렇게 잘 사는 사람이 수백 수천만 원대의 작품을 단 돈 10만 원 주고 떼어왔다고 하면 불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현대 미술에선 손이 아닌 머리가 중요해졌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전통적 미술가의 상이 무너지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지적 활동가로서의 상이 부각됐다는 이야기다.

 

조영남이 좋아한다는 뒤샹은 공장에서 찍어낸 소변기를 들고 나타나 그것이 자기 미술 작품이라고 우겨댔다. 그 이후 현대미술은 대중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괴상하고 황당한 것이 되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미술적 특징보다 철학적 특징에 상당부분 가까워졌다. 사고, 개념, 컨셉, 이런 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영남은 이런 흐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이 떳떳한 미술작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조수가 서너명, 학생 아르바이트까지 동원, 현대미술은 사기꾼놀음이런 말들을 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조영남은 이 사건 초기에 매우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랬던 조영남이 지금은 상당히 의기소침해졌다. 자기 생각과 전혀 다른 사회여론, 검찰판단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영남의 매우 이상한 점은 관행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정말로 자기 개념에 확실한 자의식과 자신감을 가진 작가였다면, 관행이라고 하지 않고 내 예술 방식이라고 했을 것이다. 관행은 남들에게 묻어가는 소극적 어법이다. 이런 어법을 쓴 것을 보면 조영남이 현대미술이 손에서 머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은 지난한 지적 고투의 과정을 잘 모르면서, 그저 서양 유명 현대 미술가들 작업의 겉모습만 보고 그대로 따라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관행이라는 무의미한 말을 한 조영남도 황당하지만 그걸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한국사회도 황당하다. 관행이건 아니건, 남들이 어떻게 하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조영남의 작업 방식이 예술에 부합하느냐이다. 그런데 그 점에서 조영남이 보여준 모습은 석연치 않다.

 

 

그렇다고 검찰이 나서서 올바른 예술적 작업방식을 우리가 정해주겠다라고 하는 건 이상하게 느껴진다. 대중이 전통적 관념에 의거해 조영남을 여론재판으로 단죄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조영남과 대중과 검찰이 모두 부적절해보이는 사건이다. 현대미술의 괴상한 풍경이 예술적으로 적절한 지는 지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것 두 가지는 사람들이 미술에서 을 너무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조영남의 그림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이다. 유명하면 좋은 작가이고, 비싸면 예술성이 있는 것이라는 식의 묻지마 미술관이 만연한 것이 바로 조영남 같은 아트테이너들이 활보할 공간을 열어줬을 것이다.

 

조영남은 그런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이 현대미술 팝아트를 선도하는 예술가라는 허세에 도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생각은 뒤샹 이래 현대미술의 풍경이면서 TV에 등장할 때는 또 대중상식에 부합하는 전통적 화가의 모습으로 이미지메이킹했다. 자기 작품이 엄청난 가격을 인정받는 예술품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것이 지금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